[이책엔♪이음악]⑯작고 소박한 것들의 미덕
[이책엔♪이음악]⑯작고 소박한 것들의 미덕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2.08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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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안녕을 말할 때'와 볼링의 'Baroque and Blue'

[북데일리] 무엇이든 크고 화려한 게 미덕인 세상입니다. 집은 클수록 좋고요, 차는 이왕이면 중후한 세단이나 튼실해 뵈는 SUV가 낫습니다. 소형차라도 큰 돈을 줘야하는 수입차가 폼 나죠. 애인도 키가 커야 대접을 받습니다. 큰 돈주머니까지 꿰차고 있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죠.

책도 문고본보다는 양장본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올해 잠깐 문고본 바람이 부는 가 싶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서점에 가면 여전히 크고 화려한 양장본이 더 눈에 띕니다. 그런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작고 소박한 게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기름기 쫙 빼고, 허울을 걷어낸 담백한 무언가가 말입니다.

신간 <안녕을 말할 때>(조화로운삶. 2008)가 그런 책입니다. 봉사단체 ‘자비로운 자매들’의 일원인 메리 페이가 쓴 동화로, 소위 ‘어른들을 위한 동화’죠.

모든 동화가 그렇듯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어린 물푸레나무 미요가 지혜 많은 느티나무 세이렌과 우정을 나누면서 이별에 대해 배운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이별은 슬픔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별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분량은 적습니다. 약 70쪽에 글보다 그림이 더 많습니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도, 하루면 다 볼 수 있는 정도죠. 여기에 정가는 9,000원. 가격에 비해 내용이 지나치게 짧다고 투덜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이는 파문은 작지 않습니다. 어느 두꺼운 책이 주는 감동 이상을 전합니다.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한 줄 한 줄이 지닌 울림 덕입니다. 역자인 시인 김경주의 손맛입니다. 이를테면 세이렌이 미요에게 들려주는 조언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파리나 열매를 다 떠나보낸 후,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서서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단다. 온몸으로 뜨거운 햇빛과 빗방울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도 필요한 거야. 떠나보낼 것을 다 보낸 후에도 자신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은 남는 법이니까.”

작가의 속내는 마지막 한 줄에 담았습니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고, 세상은 평화를 향해 성큼 더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문장이 줄줄이 흘러갑니다. 바싹 마른 마음에 숨구멍을 트여줄 글입니다.

음악 중에도 짧지만 그 어느 대곡에 뒤지지 않는 매력을 가진 음반이 있습니다. Claude Bolling의 앨범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Trio입니다. 볼링은 재즈 피아노 연주자입니다. 이 앨범은 플룻 연주자 Jean Pierre Rampal과 함께한 크로스오버 음악입니다. 크로스오버는 장르간의 경계를 허물고 조화를 꾀하는 예술로, 여기서는 클래식과 재즈가 만났습니다.

총 재생시간은 고작 34분 14초입니다. 보통 앨범의 재생 시간이 1시간 내외인 걸 감안하면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수록곡은 총 7곡으로 3분대와 5분대가 각각 3곡, 7분대가 한 곡입니다. 재즈 연주곡 치고는 역시 짧죠.

질은 양과는 전혀 상관이 없나봅니다. 이 앨범은 크로스오버 계열의 명반으로 대우 받고 있습니다. 피아노, 드럼, 베이스, 플룻의 조촐한 구성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조화 때문입니다. 가장 유명한 곡은 국내 방송에도 종종 나오는 Irandise입니다. 3분 1초 밖에 안 되지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잔잔한 선율이 다른 어떤 긴 음악보다 인상적입니다.

첫 번째 곡 Baroque and Blue 또한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음악입니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이죠. 이 앨범의 정수를 담은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아노는 변화무쌍한 리듬을 만들고, 그 위에서 플룻이 춤을 춥니다. 애잔함, 청명함, 열정, 중후함, 발랄함 등 온갖 감정을 겨우 5분 정도의 시간에 녹여냅니다.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만드는 음악이죠.

이렇듯 작지만 속이 알찬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늘,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는 건 어떨까요. 뻑적지근한 외양을 자랑하는 것들 사이를 주목해보세요. 진짜 보물은 그 작은 틈바구니에 껴있을지 모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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