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 독서지도사 강선옥 씨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27일 저녁 7시 편지 낭독회 현장. 강 씨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지수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공개했다. 읽는 내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 떨림 사이로 눈물이 배어 나왔다.
강 씨의 편지엔 그녀의 지난 7년이 들어 있었다. 남편의 교통사고, 산소 호흡기를 단 채 누워 있던 남편의 얼굴, 경제적 어려움, 가난에 쫓겨 이삿짐을 꾸려야 했던 일, 느닷없이 찾아온 우울증까지. 고단했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를 극복할 수 있게 힘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강 씨의 딸 지수.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빠의 손발을 작은 손으로 닦아내던 딸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지수가 4살이었을 무렵,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이에게 화도 많이 냈고 그로 인해 자책 또한 잦았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 때 역시 딸이 강 씨를 일으켜 세웠다. 유치원 공개 수업에 갔을 때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는 딸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든 것. 다시 살아야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낭독 내내 딸에게 ‘미안해’와 ‘고맙다’를 되뇌었다. 마지막에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면 좋겠다”며 웃었다. 진심 어린 강 씨의 편지에 박수가 터졌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보인 참석자도 있었다.
앞서 벌어졌던 작가들의 편지 낭독에선 글쓰기의 다짐을 들을 수 있었다. ‘문은 벽에다 내는 것이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읽은 시인 이문재는 “좋은 편지는 글 쓴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그 다음을 가능하게 한다”며 “앞으로 시를 편지쓰듯이 해보겠다”고 밝혔다. 시를 안 읽는 요즘, 독자들에게 시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달팽이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들고 나온 소설가 이만교는 “달팽이처럼 비록 느리더라도 전 생애를 변화시키는 걸음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이 밖에 소설가 해이수와 시인 윤예영은 ‘가을의 안부편지’를 주고받았다. 임정섭 파이미디어 대표는 ‘이 세상의 모든 을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로 바른 삶과 희망에 대해 말했다. 소설가 김다은은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의 연서 ‘나흘씩이나 내 사랑아’를 들려줬다.
이날 행사는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이 주관했다.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은 김다은을 주축으로 약 30명의 작가들이 모여 서간체 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단체다. 사회는 시인 허금주가 맡았다. 홍대 그리스 음식점 ‘그릭조이’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