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려면 '매뉴얼'을 태워버려라”
"사랑하려면 '매뉴얼'을 태워버려라”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1.27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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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의 도발- 전복적 연애론

“사랑에 대해 배우려면 각종 매뉴얼부터 태워버려라!”

[북데일리]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연애론은 도발적이다. 신간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그린비. 2008)에서 그녀는 사랑을 하려면 가장 먼저 시중의 연애비법서부터 없애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잘 나가는 연애비법서를 콕 집어 비판한다. 도마 위에 오른 건 연애컨설턴트 송창민의 <연애의 정석>(해냄. 2006)다. 다음은 <연애의 정석>의 한 구절이다.

“스킨십은 되도록 조심스럽게 시도하고, 아슬아슬한 접촉부터 시작하자. 손을 잡는 일, 팔짱을 끼는 일, 밀착된 공간에서는 무릎이 마주칠 정도, 웃으면서 어깨를 살짝 치는 일, 무언가를 털어주거나 바로 잡아주는 일, 따뜻하게 안아주는 정도가 좋다. 이 모든 걸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밟아 나가야 한다.”

이를 두고 고 씨는 “어처구니 없다”며 “기교라고 쳐도 참으로 유치한 수준”이라고 일갈한다. 기간별 연애법을 설명하는 목차를 두고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며 “노동도 이런 노동이 없다”고 꼬집는다.

무엇이 문제라는 걸까. 책에 따르면 시중에 널린 매뉴얼의 공통점은 “사랑의 모든 과정은 타인의 시선에 맞춰 진행하라는 것”이다. 이는 고백할 때는 공공연한 장소를 활용하고, 화려한 이벤트를 벌이는 등 돈을 들이는 방법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런 식의 애정표현은 결국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하수인일 따름”이라며 “전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타인의 시선에 가두는 인정욕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풀어 말하면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식의 연애라면 결과는 뻔하다. 다음은 저자의 말이다.

“요즘 커플들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는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일 터.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의 내부는 비어 간다. 결국 연애를 할수록 몸으로부터는 소외가 일어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는 셈!”

남자와 여자의 심리에 관한 고상한 에세이 역시 문제다. 저자는 이런 책들에서 얻는 건 ‘연민과 위안’이라며, 이는 “전혀 다른 삶으로 인도하지 못한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건 위안이나 동정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일까. 사실 저자는 여러 연애매뉴얼을 대체할 만한 ‘실용적‘ 비기를 내놓지는 않는다. 기존의 연애에 관련한 편견을 깨고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 연애에 성공할 것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것이 다양한 인문학적 사유다.

“대상이 나를 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어 가는 시공간적 인연의 장”이라는 그녀만의 사랑의 정의처럼 책은 아리송하다. 명쾌한 실전 기술이 없어서 그럴 터다. 하지만 사랑과 연애에 대한 도발적 혹은 전복적 사고를 가능케 해준다는 점에서 책은 의미를 갖는다.

어차피 사랑과 연애에는 정답이 없다. 그럴 바에는 타인의 시선, 자본의 구속을 벗어난 나만의 사랑법을 고민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저자가 던지는 화두를 통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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