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찾아낸 전통춤의 장인 30명
두 발로 찾아낸 전통춤의 장인 30명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1.17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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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예술혼 불태운 무용가들의 삶 '감동과 전율'

<김덕명의 학춤>
[북데일리] 춤의 홍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당장 TV를 켜보자. 온통 춤판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비보이의 춤, 클럽 매니아의 춤, 각종 무대 위의 춤 등 각종 춤이 난무한다. 인터넷 동영상 게시판을 도배하는 인기 컨텐츠도 춤이다. 춤을 모르면, 추지 못하면 썩 좋은 대접을 못 받는 요즘이다.

그런데 그런 춤판에 우리의 춤은 없다. 언제부턴가 전통춤은 자취를 감췄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신간 <춤과 그들>(동아시아. 2008)은 전통춤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망 직전의 전통춤을 남모르게 지켜온 예인들 30명의 춤사위를 담았다. 그들의 목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저자 유인화는 무던히도 뛰었다. 목적은 단 하나. 잊혀져가는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일반에 알려진 유명 원로 무용가들은 남겨놓은 춤 자산이 많지만, 이 땅의 한편에서 묵묵히 춤을 일궈온 원로 무용가들은 변변한 춤 기록조차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중략- 그들의 지나온 길을 함께 되돌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춤을 불러내고 그들이 간직한 세상의 기억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들의 춤은 사라질 것이기에...”

평생 춤을 춰야 할 팔자로 태어난 30인의 무용가

책에 따르면 30명의 무용가들은 하나 같이 춤을 팔자로 여겼다. 팔자가 부와 명예로 이어졌다면 좋았으련만, 하나같이 드센 팔자였다. 춤을 위해 많을 걸 잃고, 포기해야 했다.

춤만 60년을 추어 온 부운 김진홍(63) 씨. 그는 빡빡머리로는 춤을 못 춘다며 고등학교를 가지 않았다. 사귀는 이 없이 춤만 췄다. 그래도 괜찮단다.

“진학도, 결혼도 하지 않고 춤만 추었으니 교류하는 이가 없지요. 여기서(범일동 무용학원) 30년 살아도 아는 이가 없어요. 그래도 고독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있고, 음악 듣고 소설과 시를 읽고...”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권명화(74)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춤에 미쳤다. 기생을 가르치는 권번의 창문 너머로 춤을 배운 그녀는 제대로 둔 교육을 받고 싶어 아버지의 도장과 월사금을 훔쳤다. 그때가 17살 때였다. 결국 아버지에게 ‘피나게’ 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정식으로 춤을 시작하고, 나중에는 창에도 욕심을 냈다. 그때 목이 안 쉰다는 말에 똥물을 퍼먹다 똥독이 올라 죽을 고생을 했다.

40년 간 중요무형문화제 제21호 승전무를 지켜온 엄옥자 씨는 “춤 없이는 숨 쉴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다른 무용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춤에 빠진 그녀는 진로 문제로 많이도 맞았다. 집에선 ‘기생 될거냐’는 고함, ‘무당 새끼같다’는 힐난이 끊이지 않았다.

숙명여대 약대에 학교 추천으로 합격했던 엄 씨는 합격증을 받자마자 찢어 버렸다. 편한 길을 버렸던 그녀는 “춤만이 희망이었다”며 당시를 기억한다.

<김백봉>
우리 춤의 화려했던 역사의 기록

책은 전통춤의 화려했던 시절 또한 추억한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육성은 그날의 영광을 재현한다. ‘한국무용의 대모’라 불리는 김백봉(81) 씨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부채춤 공연을 잊지 못한다.

“부채춤이 최고의 화제였죠. -중략- 웃으면 입을 못 다물 정도로 산소가 희박해 입이 말라붙었어요, 우리 무용단 중 어떤 이는 분장실에서 의상 입고 무대로 나가다 무대 입구에서 쓰러졌어요. 결국 산소 호흡기를 대고 무대로 나가 추다가, 다시 분장실로 들어와 산소 호흡기를 대고 또 무대로 나가곤 했죠. 숨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우리 춤을 해외에 알리는 데 1등 공신이었던 권려성(76) 씨. 그녀는 1965년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9주 동안 2만 명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이다. 권 씨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린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던 때였는데, 우리는 시즌 티켓 공연 명단에 선정됐지요. 당시 라디오시티 뮤직홀은 세계적으로 검증된 아티스트만이 설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예술 단원 중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는 병역기피자가 많아 외국 공연이 힘들었는데, 정부에서 국위 선양하는 예술단이라고 출국을 허락했답니다.”

솔직함이 만든 감동과 전율

책은 솔직하다. 거친 가시밭길 같았던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말하기 민망했을 치부도 드러낸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평생 한 길을 걸은 그들의 말은 때론 전율을 일으킨다. 병상에 누워 있다는 춘당 김수악 씨의 말을 들어보자.

“예술은 마음, 정신, 인내, 공력, 한, 멋, 혼이 어우러져야 해요. 춤도 내가 추는 게 아니고 몸이 추도록 해야 합니다. 맺고 푸는 호흡의 예술이 춤이니까요.”

저자가 만난 무용가들은 전부 고령이다. 사진 속 그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덥수룩하다. 하지만 눈빛엔 총기가 여전하다. 춤사위 사진에는 절도가 배어나온다. 예술혼으로 평생을 불태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진정성과 꾸준함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심화영의 승무>
(사진제공=동아시아)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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