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죽여달라는 18살 소녀
아빠를 죽여달라는 18살 소녀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1.07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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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연 새 장편 '질러'...문제아에 대한 따뜻한 시선

“아빠를 죽여 줘!”

[북데일리] 아빠를 죽여 달라고 밥 먹듯 외치는 아이가 있다. 장편소설 <질러!>(민음사. 2008)의 미나다.

18살인 미나는 강간을 당했다. 화를 피할 여지는 있었다. 아버지에게 “빨랑 와줘, 아빠. 지금 집에 누가 있는데 너무 무서워. 빨랑 와 줘, 아빠. 꼭 올 거지?”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이유는? 사이버 주식에 미쳐서.

소설집 <스끼다시 내 인생>(문이당. 2006)으로 화제를 모았던 소설가 임정연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청소년 문제를 다룬다. 작품에는 미나의 아버지 같이 심란한 부모가 여럿 나온다. 아이를 가둬 두고 출근하는 맞벌이 부모, 시험에 떨어 질까봐 생일날조차 미역국을 끓여 주지 않는 어머니 등이다. 이들의 아이들은 소위 문제아다.

주인공은 미나와 동갑인 선우다. 잘 생겼다. 하지만 속된 말로 ‘꼴통’이다. 학교는 때려 치웠고, 검정고시를 핑계로 독서실에서 그저 빈둥거린다. 하는 일이란 용돈 벌이 겸 시간 때우기인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다.

거기서 선우는 미나를 만난다. 처음엔 “재수 없었”으나, 남녀관계라는 게 늘 그렇듯 곧 친해진다.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러던 어느 날 선우는 미나의 손에 이끌려 한 지하 사무실을 찾는다. 살인청부업자의 사무실이란다. 그곳에서 미나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통장을 내밀며 아버지를 죽여줄 것을 요청한다. 기겁한 선우는 미나를 억지로 끌어내 도망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나가 연락 두절이 된 것. 놀란 선우는 미나를 찾아 헤맨다.

작가는 이런 아이들의 눈으로 교육, 제도, 윤리 등의 문제를 따져 묻는다. 자퇴, 강간, 살인 청부 같이 소재는 무겁다.

하지만 글은 제목처럼 가볍고 경쾌하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규칙과 제도에서 일탈한 청소년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시선 또한 따뜻하다.

이에 대해 소설가 박현욱은 “임정연의 시선은 학교와 입시학원, 대학 진학이라는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 있는 아이들의 삶과 희망에 가 닿아 있다”며 “가볍지 않은 그들의 고민이 그들의 언어로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고 평가했다. 2007년 제1회 서울문화재단 문학 창작 기금 당선작.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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