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 분위기 물씬 나는 환상동화
몽환 분위기 물씬 나는 환상동화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0.24 0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맑고 투명한 문장에 섬뜩한 결론 압권

[북데일리] 읽다보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동화 <꿈 저 너머>(달리. 2008) 이야기다. 희뿌연 안개를 연상케 하는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렇다. 환상과 현실을 버무린 17개 단편은 하나같이 독특한 향기로 독자를 취하게 만든다.

표제작 ‘꿈 저 너머’를 보자. 주인공은 13살 소녀다. 아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눈이 예쁘다’라는 칭찬을 듣는다. 너무 그런 말을 듣다보니 소녀는 교만해진다. 얼굴로 모든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늘씬한 다리와 파란 눈 화장이 매혹적인 한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소녀에게 ‘드림 화장품’이라는 회사의 아이셰도를 건넨다. “조금 더 큰 후에 쓰면 좋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아이는 이내 참지 못하고 아이셰도를 바른다. 그 후 아이는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는 거울의 노예가 된다.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거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녀에게 찾아온 변화는 또 있다. 아이셰도를 바르고 자면 늘 같은 꿈을 꾸게 되는 것. 이런 내용의 꿈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마치 바다가 물결치는 것처럼 보이는 꽃밭, 아이리스가 한없이 피어 있는 파란 꽃밭을 맨발로 달리는 꿈이었습니다. 두 팔을 좍 벌리고 꽃밭이 끝나는 곳까지 달려가는 소녀의 두 발은 거의 땅에서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가도 꽃밭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아이는 새로운 꿈을 꾼다. 아이리스 꽃밭의 끝을 본다. 거기엔 벼랑이 있었고, 한 청년이 서 있다. 아이는 기대에 부풀며 남자에게 다가가지만 청년을 만나지 못한 채 꿈에서 깬다. 꿈을 이어보려 하지만 아이셰도는 바닥난 상태. 결국 소녀는 화장품 회사를 찾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새 화장품을 얻은 아니는 꿈에서 그 청년을 만난다. 그렇게 둘은 행복하게 살았을까. 그런 평범한 결말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둘은 돌풍에 떠밀려 바다로 떨어진다. 마지막 문장이다.

“젊은이와 소녀는 손을 마주잡은 채 마치 종이인형처럼 춤을 추면서 드넓은 바다로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작가 아와 나오코는 이 섬뜩한 결론까지 맑고 투명한 문장으로 독자를 내몬다. 다른 단편들 역시 비슷하다. 흔한 이야기는 없다. 저마다 강한 개성을 보여준다.

작품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해주는 건 아지토 게이코의 일러스트다. 흐릿한 색과 부드러운 선, 인물의 초점 잃은 눈, 여백을 살린 배치, 조금은 기괴한 그림이 각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사진제공=달리)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