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뛰어넘는 20세기 ‘크툴후 신화’
'고전' 뛰어넘는 20세기 ‘크툴후 신화’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0.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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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환상 문학 작가 '러브크래프트' 작품

[북데일리] 신화는 말 그대로 ‘옛날 옛적 이야기’다.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너무 오래된 탓일까. 이제 와서 내용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실은 남자였다‘라는 요즘 식의 발칙한 해석은 씨도 안 먹힌다. 신화는 늘 있는 그대로다.

하지만 늘 예외는 있는 법. 크툴후 신화가 그렇다. 크툴후 신화는 고대부터 내려온 여타 신화와 다르다. 미국 환상 문학 작가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20세기에 만든 신화다. 대략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크툴후 신화의 신들은 우주 바깥에서 날아와 고대 지구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래서 ‘구 지배자’라고도 불린다. 이들의 목적은 우주에 존재하는 악(惡) 의지의 실현이다.

이들은 서로 결속해 그들을 낳은 부모이자 우주에서 선의 의지를 실현하는 ‘구 신’들에게 도전한다. 하지만 패배하고 결국 바다 밑이나 우주 바깥에 봉인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진 건 아니다. 현재 세계 곳곳에 그들을 숭배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이런 20세기에 만들어진 신화를 고대 신화와 동급으로 여긴다는 게 가당찮다고 여길 독자도 있을 터. 그러나 크툴후 신화는 고대 신화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다. 전 세계 환상 문학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후배 작가들이 그가 창조한 신화를 인용한다.

신간 <신화대전>(반디. 2008)의 저자 조 지무쇼는 크툴후 신화를 크게 인정하는 사람 중 하나다. 전 세계의 신화를 소개하는 이 책에서 그는 “크툴후 신화가 이렇게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면, 다른 어떤 고대 신화와 비교하더라도 신화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크툴후 신화가 본격화 된 건 러브크래프트가 1926년 <크툴후의 부름>을 발표한 이후다. 당시 러브크래프트는 자기가 창작한 크툴후 신화의 저작권을 포기, 모두에게 개방한다. 누구든 크툴후 신화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의 바람대로 많은 후배 작가들이 크툴후 신화 작품의 집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가장 큰 공헌을 한 작가는 오거스트 달레스다. 그는 1937년 러브크래프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괴기 환상 문학 전문 출판사 ‘아컴 하우스’를 설립한다. 거기서 그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간행하고, 크툴후 신화의 세계관을 정리하고 체계화한다.

그 후 후배작가들은 너도나도 크툴후 신화를 독자적으로 각색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책이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실제 존재하는 책으로 등장하는 일도 많아진다. C.A. 스미스, 로버트 브록, 오거스트 달레스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크툴후를 구두용(九頭龍)으로 부르며 이용한다. 일본작가들은 크툴후 신화의 사신들이 과거 일본에 나타났었다는 내용을 쓰기도 한다.

크툴후 신화는 20세기에 만들어진 만큼 세계관이 독특하다. 현실과 공상이 뒤섞여 있다. 먼저 신화의 중심 무대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라는 현실 속 공간이다. 여기를 채우는 건 도시 아컴과 미스카토닉 대학, 거리 인스머스, 수수께끼의 고대 대륙 하이퍼보리아, 해저 신전 르리에 등 가상의 장소다. 이 중 아컴이나 인스머스의 경우 실제 존재하는 시골 도시 프로비던스를 연상시킨다.

책은 이 외에도 신화의 대표주자인 그리스, 켈트, 북유럽,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신화를 각각의 신 중심으로 다룬다. 신화 입문서로 적절하다.

(사진제공=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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