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경란 '혀' 표절 논란 '이상한 침묵'
[기자수첩] 조경란 '혀' 표절 논란 '이상한 침묵'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0.13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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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두고 방관하는 문단과 언론 대체 왜 그럴까

[북데일리] 지난 달 중순의 일이다. 조경란의 장편소설 <혀>(문학동네. 2007)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신인 주이란이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자신의 단편 ‘혀’를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조경란이 표절했다며 저작권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다.

논란이 본격화 된 건 그녀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저는 영혼을 도둑맞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면서부터다. 이 글에서 주이란은 자신의 단편 ‘혀’의 주제와 소재, 아이디어, 사건의 전개과정, 결말이 조경란의 <혀>와 같다고 주장했다. 문체와 분위기 등도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 때가 지난 달 26일이다. 벌써 보름 이상이 지났지만,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프레시안 정도만 계속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프레시안은 6일 소설가 김곰치의 기고문을 통해 주이란의 주장을 거들었다. 같은 날 홍세화 한겨레기획위원의 칼럼을 인용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12일에는 한 독자의 기고문을 실어 다시 한 번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정작 입을 열어야 하는 쪽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문단은 물론 소위 주류 언론은 말이 없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양 조선일보와 문단은 조경란을 올해의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나마 하나 있는 건 문학동네와 조경란 측의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들은 장편 <혀>는 이미 10여 년 전 구상한 작품이고, 주이란의 ‘혀’는 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주이란의 ‘혀’와는 전혀 별개의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정말 그럴까. 일단 주제나 전개과정, 문체, 분위기가 같다는 건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주이란의 ‘혀’와 다르게 조경란의 <혀>가 헤어진 남자에 집착하는 걸 주 내용으로 하고, 요리에 관한 설명이 많다는 점도 표절 여부를 헛갈리게 만든다.

따져봐야 할 건 소설 내 몇 가지 핵심적인 부분이다. 먼저 혀를 잘라 요리한다는 엽기적인 결론이 비슷하다. 차이는 누가 자르느냐다. 조경란의 <혀>에서는 애인을 뺏어간 여자의 혀를 주인공인 요리사가 자른다. 주이란의 ‘혀’는 주인공이 직접 자신의 혀를 자른다.

혀의 용도 면도 닮았다. 주이란의 ‘혀’에서는 혀를 이용해 맛과 어린 아이의 성기를 탐한다. 능수능란한 거짓말로 사기를 치기도 한다. 조경란 식으로 표현하면 “사랑하는, 맛보는, 거짓말하는 혀(책 띄지와 책 표지 뒷면)”에 대해 명확하게 그렸다.

조경란의 <혀>에도 이 세 가지가 등장한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다. 조경란은 주로 “맛보는” 혀에 집중한다. 주이란의 혀처럼 구강성교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전면에 등장하진 않는다. “사랑하는, 맛보는, 거짓말하는 혀”라는 설명 문구가 어색할 정도다.

그렇다면 보자. 이런 유사점을 가지고 표절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하지 싶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표절 여부를 명확하게 해주는 문장과 문단의 무단도용은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렇다고 마냥 모르쇠로 일관하는 건 옳지 않다. 지금과 같은 침묵은 끊임없이 의혹을 부르고, 더 큰 추문을 만들 뿐이다.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의 신뢰에도 금이 갈 게 뻔하다. 벌써 독자들 사이에서는 실망이라는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를 문단과 언론, 문학동네와 조경란은 정녕 모르는 걸까.

문단과 언론, 문학동네와 조경란에게 묻고 싶다. 주이란의 주장이 정말 ‘어이없는 헛소리’고 ‘이름을 알리기 위한 수작’에 불과한지. 또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이번 사건이 ‘매력 없는 공방‘인지 말이다.

오해가 있다면 명쾌하게 해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도리다. 일파만파 커진 사건을 그저 덮어두고 방관하는 건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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