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별명 '소설기계'로 돌아온 김경욱
새 별명 '소설기계'로 돌아온 김경욱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0.06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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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비판 어우러진 소설집 '위험한 독서' 출간

[북데일리] 소설가 김경욱에게 새 별명이 생겼다. ‘소설기계‘, 문학평론가 서영채가 붙여준 별명이다. 그는 김경욱의 신작 소설집 <위험한 독서>(문학동네. 2008)의 해설에서 “소설기계가 하나 탄생했다”고 선언했다.

창조를 일삼는 예술가에게 감정과 혼이 없는 기계라니. 작가에게 자칫 모욕이 될 수 있는 표현이다. 풀어 말하면 이렇다.

먼저 등단 16년 만에 이번 신작을 포함해 지금까지 소설집 5권, 장편소설 4권을 써낸 작가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뜻한다. 김경욱 소설의 독창성을 돌려 말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세대적 자의식을 포기해야 했고, 독창성에 대한 추구라는 예술가적인 태도의 결연함을 접어두어야 했다. 그 결과로 소설기계가 하나 탄생했다. -중략- 김경욱은 독창성에 대한 추구를 유보함으로써 기계의 길에 들어섰지만,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독창성에 이르는 길일지도 모른다.” (해설-작가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이렇게 소설기계라는 표현은 김경욱을 향한 응원이자 찬사다. 그렇다면 이제 의심할 차례다. 과연 그의 이번작품이 소설기계, 그것도 ‘진화하는 소설기계’라는 칭송을 받을만할까.

작가의 작품을 쭉 읽어온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듯싶다. 일단 기존 어떤 작품보다 재미가 있다. 한결 능수능란해진 유머 덕이다. 소설가 은희경이 ‘위험한 독서’를 두고 이상문학상 심사평에서 “유머도 강해져서 소설을 잘 받쳐준다”고 평했듯, 소설집 전반에 유머가 넘친다. 압권은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이다.

테러의 위험을 감지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벌어지는 과정을 그린 이 단편에서 작가는 기발한 말장난으로 독자를 ‘웃긴다’. 이를테면 주인공이 주운 종이가 있다. 물에 젖는 바람에 잉크가 번져 글자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써 있다.

“XX세X X성X자를 X취하지 마라. X경XXX 즉각 중단하라. 아XX의 X강을 XX지 XX.”

이를 본 아르바이트생들이 지워진 문장을 추론한다. 하나같이 엉뚱하다.

“망할세상 만성적자를 고취하지 마라, 여보세요 악성감자를 섭취하지 마라, 포경수술을 즉각 중단하라, 아우들의 요강을 버리지 마라.”

이 외에 천재적인 암기, 암산 능력을 가진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그린 ‘게임의 규칙’, 서울올림픽 무렵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황홀한 사춘기’ 등이 독자의 웃음보를 쥐락펴락할 단편들이다.

사회 현상을 포착하는 눈과 이를 소설에 버무려내는 감각은 여전하다. 독서치료사인 나의 독백으로 이뤄진 표제작 ‘위험한 독서’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주인공 나는 애인과 헤어지지 못하는 여성을 책으로 치료한다. 냉소적인 나는 그녀를 ‘읽어내는‘ 과정에서 호감을 느끼고, 급기야 둘은 잠자리를 갖는다. 관계를 발전시킬 문이 열린 셈이다. 하지만 그녀는 쪽지 하나를 남기고 떠난다. 주인공은 그녀의 연락처를 모르지만, 다행히 그녀의 미니홈피를 찾아낸다. 그렇게 그녀의 생활을 엿보며 독백을 끝낸다. 이때 주목할 건 소설 마지막 문장이다.

“당신의 근황이 늘 궁금한 나에게는 두려운 문장이 하나 생겼다. 최근 2주간 새 게시물이 없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일이다. 그렇다고 마냥 반가워할 문장은 아니다. 이는 현대사회의 단절된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직접적인 만남과 소통엔 겁을 내고, 고작 미니홈피를 통해 “다시 당신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자축하며 그 업데이트 유무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현대인의 씁쓸한 자화상을 조각했다. 이런 방식은 한동안 유행했던 ‘00% 카카오 초콜릿‘을 이용해 현대인의 믿음과 진실을 그려냈던, 단편 ’99%(제53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와 닮았다.

이 밖에 소설의 창조성에 대해 고민하는 ‘천년여왕’, 고독과 같은 추상적 개념까지 빌려준다는 회사를 소재로 삼은 ‘고독을 빌려드립니다’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대리모가 된 아내의 심리 변화를 그린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는 섬뜩한 재미가 있다.

책은 곳곳에 심어둔 해학과 은근한 사회비판으로 독자를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밀어 붙인다. 소설기계 김경욱, 어울리는 별명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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