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고70' 속 금지곡 사연
영화 '고고70' 속 금지곡 사연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0.06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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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럭키 서울...', 그때 그 시절 풍속 담백한 묘사

[북데일리] 조승우 주연의 최근 개봉작 ‘고고70’에는 젊은 세대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장면이 나온다. 팝칼럼니스트 이병욱(이성민)이 금지곡을 고르는 장면이다.

유신의 칼날이 시퍼렇던 시절 이병욱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간다. 거기서 그는 팝음악 중 저질스럽고 사회 비판적인 음악을 골라내, 퇴폐 문화 소탕에 일조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면서 정권이 선정한 국내 금지곡 리스트를 넘겨준다. 거기에는 수많은 노래가 5자 내외의 짧은 이유를 달고 금지곡에 올라 있다.

당시를 살았던 세대라면 금방 이해가 될 장면이다. 하지만 금지곡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선 요즘 젊은 세대에겐 의문이 드는 장면일 터. 게다가 짤막한 금지 사유는 그 곡들이 금지곡이 된 이유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신간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추수밭. 2008)에 의문을 풀어주는 내용이 나온다. 당대 히트곡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이다. 이 곡은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가사가 문제였다. 대체 무엇을 기다리느냐는 것.

‘아침이슬’의 경우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가사가 대한민국의 적화를 암시한다고 철퇴를 맞았다. 한대수의 ‘행복한 나라’는 어떤가.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라는 부분을 두고 정권은 ‘지금은 행복하지 않냐, 행복한 나라는 북한이냐’며 꼬투리를 잡았다.

‘거짓말이야’가 금지곡이 된 사연은 한 편의 촌극이다. 공식적인 이유는 불신감을 조장한다는 거였는데, 사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설 직후 방송국 PD가 이 곡을 틀어서 금지곡이 됐다고.

이장희의 ‘그건 너’를 두고는 늦은 밤까지 잠 못 드는 이유가 유신 체제 때문이냐고 물었다. 배호의 ‘O시의 이별’은 제목이 문제였다. 0시부터 통금인데 0시에 이별하는 상황은 말이 안 된다는 거였다. 신중현의 미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는 가사가 퇴폐적이라고 지적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금지곡 몇 개를 더 살펴보자.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제목이 논란이 됐다. 정권은 사랑이 왜 이루어질 수 없냐고 억지를 부렸다. 심수종의 ‘순자의 가을’은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의 이름을 제목에 써서 금지곡이 됐다. 이 곡은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로 바뀌어야 했다.

전역한 군인의 순수한 애국심을 담은 노래도 금지곡 리스트에 올랐다.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로 현역 국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문제 삼았다. 송창식의 ‘왜 불러’는 장발 단속에 저항한다고 철퇴를 날렸다.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은 6, 70년대 삶과 문화를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니 고고70과 겹쳐지는 내용이 많다. 영화와 관련된 부분을 좀 더 들여다보자. 먼저 영화의 무대인 ‘닐바나’를 저자 손상진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고고장의 효시는 1971년 봄 남산 기슭에 들어선 ‘닐바나’다. 닐바나는 대박을 터뜨렸다. 노동자 월급이 1만 원도 안 되던 때 입장료를 1000원이나 받았는데도 입장객이 줄을 이었다. 야간 통금 시간에도 당국의 감시를 피해 숨바꼭질 영업(논스톱 고고)을 했다.”

영화 속 양념으로 나오는 장발 단속에 관련한 쓴웃음 나는 일화도 엿 볼 수 있다.

“장발 단속을 보도하던 방송기자는 ‘저런 놈들이 다음에 사회에 나가 뭐가 될지 걱정입니다’라는 황당한 코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외국인 장발족 입국불허 방침’이었다. 공항이나 항구에서 머리를 깎지 않으면 입국시키지 않겠다고 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

영화의 배경인 70년대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길 원하는 독자에게 적합한 책이다. 영화처럼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뺀 덕에 읽기에 부담이 없다. 그때 그 시절의 풍속을 담백하게 그렸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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