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추'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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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재청 시민기자
  • 승인 2008.10.0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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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무관심 속에 텔레비전 친구 사귀는 아이들

[북데일리]텔레비전 속에 친구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마음은 책 제목에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며 그곳에 친구가 있다고 해서 솔깃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텔레비전은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에게도 친구입니다.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라고 떼를 쓰거나 혹은 심심하다고 투정 부릴 때 리모컨을 누르면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그때부터 텔레비전은 엄마 아빠의 손과 발이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점점 텔레비전과 가깝게 지낼수록 나는 그것과 멀어졌습니다. 나에게 텔레비전은 친구이지만 좋은 관계는 아닙니다. 단지 내가 필요에 따라서 텔레비전이 켜졌다 할 뿐입니다. 그러니 텔레비전 속 친구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아니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릅니다. 아이들은 텔레비전 속 친구와 말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텔레비전 속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텔레비전 속 내 친구>(비룡소. 2007)는 엉뚱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텔레비전 속 친구가 나옵니다. 아이들 친구라고 해서 아이들 눈높이 맞는 피터팬을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텔레비전 속 친구는 칼 아저씨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안톤이 칼 아저씨를 만나게 된 계기는 리모컨에 있는 파란 단추 덕분입니다. 이 단추를 누르면 정규방송 화면이 찌지직거리고 나면 칼 아저씨를 볼 수 있습니다.

칼 아저씨의 최대 장점은 무슨 얘기든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엄마 아빠는 이런저런 일로 늘 티격대격 합니다. 더구나 안톤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라고 질문했을 때 엄마는 ‘자기가 믿는 것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멍청한 질문이라고 여깁니다. 그럴수록 안톤은 칼 아저씨에게 더욱 의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칼 아저씨는 안톤이 텔레비전의 밖 세상에서 잘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칼 아저씨 덕분에 ‘보통’ 밑의 평점이 하나도 없는 끝내주는 성적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안톤이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하자 그것은 스스로 그렇게 믿으니까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학교라면 질색을 하는 아빠를 대신하여 담임을 만나기 위해 텔레비전 밖으로 나온 칼 아저씨의 용기가 아주 멋졌습니다.

이런 칼 아저씨에게 최대 장점이 또 있다면 그것은 바로 통쾌함입니다. 안톤의 자존심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돼지우리 같다며 야단을 치자 “아빠한테 화가 났으면서 나한테 잘못을 떠넘기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화만 났다하면 나한테 화풀이다.”라고 맞섭니다. 그러자 안톤의 엄마가 따귀를 때립니다. 그때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칼 아저씨가 “작고 마른 어린애들을 때리는 크고 뚱뚱한 엄마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인간들이야.”라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안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칼 아저씨가 자신의 엄마를 가장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비난하는데도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이것은 곧 엄마 아빠의 무관심이 안톤을 외롭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허허로움을 칼 아저씨의 도움으로 채웠지만 끝내 안톤은 텔레비전 속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안톤같은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면 엄마 아빠는 리모컨을 살펴봐야 합니다. 혹 파란 단추가 있는지? 만약 없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모르는 사이에 생길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 아이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엄마 아빠입니다. 앞으로는 리모컨의 파란 단추가 아닌 엄마 아빠의 사랑 단추를 누를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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