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낳는 제국이라는 괴물의 정체
악을 낳는 제국이라는 괴물의 정체
  • 북데일리
  • 승인 2005.06.2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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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야만인은 누구고 제국은 또 어디란 말인가.`

존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들녘)를 읽다 보면 이런 수수께끼와 만나게 된다. 이 의문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 문제로 눈을 돌리면 곧 수긍하게 될지 모른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야만의 국가`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지만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미국 내외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그 `야만인`이 과연 누구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작품은 바로 이 같은 아이러니컬한 시대상황이 있기에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작가는 무엇보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야만인이란 결국 제국주의자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피 억압자인 야만인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제국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따라서 제국은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 피 억압자를 만들어내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신을 연장시키려 하는 존재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어느 날 제국에 야만인들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소문이 퍼진다. 그들은 부녀자를 강간하고 아이들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는 잔혹한 집단이다. 제국은 습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러나 가끔 어부나 유목민들이 지나갔을 뿐 야만인은 오지 않는다. 결국 제국은 평범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때리고 고문해 야만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작품은 제국을 위해 봉사하는 한 시골의 치안판사의 눈을 통해 제국의 부조리함을 깨달아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치안판사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이 ‘야만인들’을 억압하고 식민화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인공은 제국이라는 체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안으로부터 폭로하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 눈 여겨 볼 대목은 작가에 대한 정보다. 존 쿳시는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남아프리카 출신의 작가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손꼽히는 세계 3대 문학상.

작가가 남아프리카 출신이란 점은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조국의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작품에서 특정시대와 공간을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제국의 폭력이 남아프리카만이 아니라 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것이란 점을 웅변하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작품 초입에서 느낀 의문은 공감으로 바뀌게 된다.

집단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비판한 이 작품은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과 구성으로 빛을 발한다. 출판사 측은 "작가 특유의 사유의 깊이와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가 발전하고 시대가 변했음에도 여전히 부조리한 세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야만성`을 여전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지성인들의 절망감,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다면 작가의 글이 갖고 있는 폭발적 힘과 매력에 한층 묘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북데일리 제성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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