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섬고개 친구들'이 고발한 부조리
'꽃섬고개 친구들'이 고발한 부조리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9.29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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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신작소설...우리를 둘러싼 온갖 폭력 고발

[북데일리] <괭이부리말 아이들>, <거대한 뿌리> 등을 쓴 작가 김중미가 부조리한 현실에 일침을 날렸다. 그녀는 새 장편소설 <꽃섬고개 친구들>(검둥소. 2008)에서 소외계층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그러모았다.

작품의 배경은 꽃섬고개라는 달동네. 주인공은 ‘못 사는 집 아이들‘ 한길이와 선경이다. 초등학생인 둘은 어린 시절부터 폭력에 찌들어 산다. 물리적 폭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학교 선생님의 무분별한 혼찌검, 친구들이 툭툭 내뱉는 한 마디, 부자동네 사람들의 못마땅한 시선, 살 곳마저 빼앗으려는 자본가와 권력자들의 추태 등 모든 부조리를 뜻한다.

‘가난해도 행복하다‘는 통속극 공식이라도 따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다. 한길이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틈만 나면 폭력을 휘두르다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선경이는 노쇠한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 어머니는 얼굴도 잘 모르고, 그나마 있는 아버지는 돈 번다고 집을 나간 지 오래다.

다행히 기댈 곳이 한 군데 있다. 초등학교 교사 이재성이 자원봉사자들과 꾸리는 공부방이다. 이곳은 주인공은 물론 꽃섬고개 아이들 모두에게 위로를 건넨다. 특히 이재성의 헌신과 열린 사고는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공부방을 토대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나갈까. 그리 쉽지 않다. 현실의 폭력은 좁은 공부방과 이재성 개인의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세고 광범위하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계속 폭력에 시달린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선경이는 이른바 노동착취를 당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임금을 제때 못 받고 온갖 모욕적인 처사를 참아야 한다. 학교생활도 지옥 같다. 상고에 진학한 선경이는 각종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한 한길이는 강압적인 학교 규칙에 어쩔 줄 몰라 한다. 폭력과 폭언이 예사인 그곳은 ‘모범생‘ 한길이 조차 폭발하게 만든다.

둘의 친구 태욱이와 영미는 한길이와 선경이가 겪지 못한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아이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싸움질을 했던 태욱이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마음을 잡지 못한다. 그러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히고 소위 낙오자로 분류된다.

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영미는 줄기차게 상처 받는다. 초등학교 때는 왕따로, 고등학교에서는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휴대폰 영업 일을 하지만, 그 와중에 낙태를 경험하고 또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는 등 곡절 많은 20대를 보낸다.

이렇듯 작가는 각 인물을 중심으로 쉴 새 없이 사회의 폭력을 고발한다. 어느 하나 해결되고 넘어가는 게 없다. 문제 하나가 불거지면, 수습할 틈도 없이 또 다른 문제가 터진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폭력이 만든 상처는 쌓여간다.

독자를 더 가슴 아프게 하는 건 소설 대부분의 갈등이 ‘돈’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책은 자본의 폭압적인 성격이 얼마나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보여준다.

소설은 후반부로 가면 문제의식을 한층 넓힌다. 빈곤의 문제에서 벗어나 동성애와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까지 다룬다. 작가는 선경이와 레즈비언 친구 보라와의 관계에서 동성애는 사랑의 한 종류일 뿐임을 보여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하는 한길이의 경우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병역거부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편협함을 지적한다.

눈물이 많은 독자라면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코끝을 찡하게 하는 일이 이래저래 많아서다. 책이 묘사하는 빈곤층의 척박한 삶은 타인에게 무심한 사람이라도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책에 비극만 늘어선 건 아니다. 작가는 결말에서 작게나마 희망의 여지를 남겨둔다. 불행의 사슬을 도저히 끊을 수 없을 것 같던 주인공들이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서다.

이를 보면 작가가 사회에 대한 분노와 냉소로 똘똘 뭉친 ‘전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이런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시선의 조화. <꽃섬고개 친구들>이 빛나는 이유다. 올 가을, 놓치기 아까운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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