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한 라라' 들고 돌아온 마광수
'발랄한 라라' 들고 돌아온 마광수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9.16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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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편소설... 여전한 야한 이야기 독자반응 궁금

[북데일리] 작가 마광수가 돌아왔다. <발랄한 라라>(평단. 2008), 그의 생애 첫 단편소설집이다.

마광수는 소설 <즐거운 사라>로 옥살이까지 했던 작가다. 성에 대한 지나친 솔직함과 노골적인 묘사 탓이다. 당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도 외설 논란이 불거지면 늘 '끌려나오는' 일화다.

이번 작품 역시 성(性)이 소재다. 표현 수위는 여전히 높다. 그래서 서점에서 그의 신작을 돈 안내고 들춰보기란 불가능하다.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딱지를 붙이고 비닐로 꽁꽁 싸매져있다.

포장을 뜯고, 뚜껑을 열어보면 야한 이야기와 적나라한 성 행위 묘사가 흘러넘친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가 충격 받을 정도는 아니지 싶다. 인터넷의 발달로 온갖 종류의 음란물에 ‘단련된’ 그들이니 말이다.

오히려 주목할 점은 각 작품의 분량과 작가 특유의 '페티시즘(fetishism)'이다. 먼저 분량이다.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책에 수록된 작품 수는 총 30개다. 그만큼 짧은 이야기가 많다. 원고지 20매 안팎 분량의 작품이 여럿 있다.

기존 소설집에 익숙한 독자라면 의아해 할 대목이다. 그렇게 짧은 소설은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게 소설이 맞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는 “단편소설의 묘미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명제에서 나온다”며 “분량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말한다.

“나는 될 수 있으면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편들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에, 분량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아주 짧은 단편에 매력을 느낀다.”(서문)

그러면서 그는 국내 단편소설의 한계를 지적한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단편소설들은 너무 질보다 양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며 “200자 원고지로 100매 정도는 돼야 작가의 역량(?)이 드러나는 줄 안다”고 비판한다.

동시에 단편소설은 탈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좋은 단편소설의 요건으로 잔인한, 공포스런, 변태성욕에 대한, 끝마무리가 엉뚱한 반전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를 꼽는다.

그래서일까. 책에서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탈현실적‘이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워 보이는 인물과 이야기가 가득하다. 남녀가 느닷없이 만나, 갑작스레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게 현실에서 흔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이 외에 페티스즘에 대한 묘사는 책의 뛰어난 볼거리다. 페티시즘은 특정 물건이나 신체 부위에 집착하고, 성적 만족감을 얻으려는 경향을 말한다.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다는 저자는 긴 손톱을 그의 페티스로 규정해 책 곳곳에서 다양하게 묘사한다.

“손톱에 칠혀져 있는 펄 섞인 매니큐어가 밤하늘의 별빛처럼 반짝이며 여전히 그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p27)

“손톱들이 손끝에서 30센티미터 정도는 뻗어나가 있는 것에도 놀랐지만, 구부러들며 휘어진 정도가 마치 타원형의 동그라미를 반으로 자른 것처럼 굽은 것을 모니 모조손톱을 붙인 게 아니었다.”(p107)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문다. 담배를 쥔 손가락의 긴 손톱이 곱다. 손톱 위엔 금빛 물감이 칠해져 있다.”(154)

세상은 많이 변했다. 그가 구속 된 1992년에 비해 성에 대해 훨씬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회다. 소설보다 성을 자극적으로 다루는 매체는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작품을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뭇 궁금하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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