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가 주는 감동은 `열정`
`책에 미친 바보`가 주는 감동은 `열정`
  • 북데일리
  • 승인 2005.11.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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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가 조선시대 지식인의 광기와 열정을 탐색한 책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2004)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저명한 저술가이자 열혈 독서광이었던 이덕무(1741~1793). 그의 글만을 따로 담은 <책에 미친 바보>(미다스북. 2004)는 독서의 본질과 그 무한한 가치에 대해 말한다.

수많은 고서들에 대한 이덕무의 느낌과 생각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장정일의 독서일기 조선편’ 이라고 할만하다. 서문을 열고 있는 연암 박지원은 “이덕무는 평생 읽은 책이 2만권에 달했으며 손수 베낀 문자만 수백권이다. 이 모든 글씨가 반듯하고 아무리 바빠도 속자(俗字)를 쓴 것은 한글자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덕무 자신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가난해서 반꿰의 돈도 저축하지 못하는 주제에 이 세상의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고 어리석고 둔해 한권의 책도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하는 주제에 오랜 세월이 담긴 경전과 이야기책을 다 보려고 하는 구나. 이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바보다. 아..이덕무야! 이덕무야!”(본문 중)

자신을 책망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독서에 대한 갈증처럼 보인다. 지독히 가난했고, 특별한 재능을 가지지 못했던 그가 평생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이 ‘책’이었다는 사실은 저술가로서, 학자로서 가졌던 그의 ‘열정’이야 말로 남다른 ‘재능’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덕무는 ‘책을 보는 바른 방법’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책을 볼 때는 서문, 범례, 저자, 교정자 그리고 권질이 얼마 만큼이고 목록이 몇인지를 먼저 살펴 그 책의 체제를 구별해야 한다. 대충대충 넘기고서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 글을 읽을 때는 시간을 배정한 다음 정한 시간을 넘기면서 읽어도 안 되고 덜 읽어도 안 된다. 나는 어릴 때 하루도 글 읽기를 빼먹은 일이 없다. 아침에 사오십 줄을 배우면 그것을 하루에 오십 번씩 읽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번 차례로 나누고 한차례에 열 번씩 읽었다. 몸이 너무 아플 때가 아니고서는 한번도 어기지 않았다. 그렇게 하니까 공부하는 과정이 여유가 있고 정신이 충전되었다. 육서六書를 제대로 이해 못하면 육경六經은 당연히 알 수가 없다. 먼서 ‘설문해자’를 읽어서 자획, 자의, 자음을 분명히 알고 그다음에 글을 읽어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글을 읽을 때는 명물名物이나 글 뜻이 어려운 본문을 그때그때 적어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물어보라”(본문 중)

‘독서의 시금석’이 될만한 태도가 심금을 울린다.

책은 박지원이 이덕무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친구가 저 세상으로 떠난 뒤 나는 이리저리 방황하고 울먹이면서 혹시라도 이덕무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까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던 이유를 깨닫게 만든다. 이덕무의 근면한 태도는 학문이란 결과만이 아닌 끈기를 잃지 않는 성실한 과정에 그 가치가 존재함을 보여준 감동의 ‘역사적 증언’ 이다.

(사진 = 김천시립도서관 조형물)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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