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이 차려준 ‘행복한 잔칫상’
공선옥이 차려준 ‘행복한 잔칫상’
  • 제갈지현
  • 승인 2008.06.1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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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고구마, 쑥, 감자, 보리밥, 감, 쌀밥, 무, 콩, 호박, 달래, 냉이 등 이름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음식이 있다.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식품의 인기로 인해 주춤했던 우리의 먹거리가 웰빙 열풍을 타고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널렸던 먹거리들은 어느새 소위 말하는 ‘시골’에서야 볼 수 있는 식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깨끗이 씻어져 판매되고 있는 음식들에 비해, 텃밭에서 쑥 뽑아 흙이나 벌레가 붙어있는 자연산 유기농 식재료들이 더 추대 받고 있는 것이다.

다른 반찬 없이 제철 야채 하나면 밥 한 그릇 뚝딱이었던 추억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 먹거리에 대한 즐거움은 따뜻한 쌀밥 한 그릇에서 찾을 수 있다. 쌀밥과 텃밭에서 길러먹는 야채를 현대인에게 소개하며, 행복한 만찬을 즐기게 해주는 책이 소개되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행복한 만찬>(달. 2008)이 바로 그 주인공!

책은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당대. 2005)의 저자 공선옥의 음식 산문집이다.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로 추억으로 차려낸, 따뜻하고 유쾌한, 가슴 뭉클한 음식 이야기를 독자에게 선물했던 그녀이기에 책은 완성될 수 있었다.

책 속엔 하나의 식재료에 관한 그녀의 추억이 있고, 음식 만드는 과정이 있으며, 음식에 관한 단상까지 담겨있다. 사진과 함께 글을 읽다보면 저절로 상상이 되며 허기가 진다. 그야 말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따뜻한 정에서 오는 허기일 것이다. ‘몸에 좋은 것’과 ‘맛있는 것’만을 챙기는 데서 오는.

“토란탕을 맛있게 끓이는 첫 번째 비결은 먼저 토란을 뜨물에 담가두는 것이다. 그리고 맑은 뜨물에 끓이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생깨를 갈아 넣는 것이다. 톱톱하게 거른 깻국물에 토란이 완전히 익게 끓이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음식은 자기 입맛에 맞게, 자기 식대로 요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요리법일 터. 한밤중에 간식으로 먹는 토란탕은 내 출출한 속을 채우며 말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향기로 내 근원적 외로움까지 위로해주는 것 같다.” p117

“그때 비어져 나온 눈물은 도대체 기쁨의 눈물이었는지 슬픔의 눈물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나와 내 동무들은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다만 우리는 그해 봄에도 쑥을 캤을 뿐, 조선 쑥을 캤을 뿐. 조선 중에서도 전라도 촌가시내들이었던 우리는.” p28

“추어탕은 내게 가을의 풍성함과 함께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결핍감을 동시에 일깨우는 음식이 되었다. 추어탕을 먹을 때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먹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토지를 물려받지 못한 가난한 할아버지의 작은아들의 딸이다, 작은집 애다. 작은집들은 추어탕을 별로 안 끓여 먹는다. 더구나 딸만 있는 작은집이니. 추어탕은 아들 많은 큰집들에서 끓인다. 가을 저녁이면 세상의 큰집들은 아들들이 잡아온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이느라고 부산하다.” p231

책에 등장하는 스물여섯 조각의 먹을거리에 관한 이야기들은 지난 시절, 허기진 밤들과 허기진 세상을 행복으로 수놓았을 소소한 기억들로 차려낸 ‘소박한 만찬’이다. 또한, 먹을 것을 지키기 어려운 안쓰러운 세상에 공선옥이 차려주는 ‘행복한 잔칫상’이다.

저자는 책을 쓴 동기를 정확하게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부드러운 문체의 공선옥의 서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반성해라. 반성해라. 반성해라” 라고 외치는 듯하다.

이제 사람들은 제 입에 들어오는 음식의 내력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로, 몰라도 좋은 상태로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을 찾는다. 나는 그런 세상의 인심이 얄미웠다. 찔레꽃 향기도 나지 않고 뻐꾸기 소리도 나지 않는 쌀밥이나 솔(부추)김치를 먹는 일은, 지렁이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 죽순을 먹는 일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종의 단순 ‘작업’일 뿐이다. 먹는 행위에서 육체적 만족감과 더불어 영혼의 교감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이 없다면, 배부르지만 불행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처럼 때때로 보잘 것 없다고 치부당하는 소소한 먹을거리들도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에서는 무척 달달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지난 시절의 허기진 밤을 행복하게 해준 그때 그 시절의 경험과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우리 주변에 함께 했던 것들, 슬픔도 아픔도 가난도 너른 품으로 끌어안고 있는 먹을거리의 내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바람직한 생장’을 한 우리 땅의 먹을거리와 아련했던 옛 시절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제갈지현 책전문기자 galj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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