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팅 뉴스] 배우 최일화 '아내의 말 한마디로 연극에 대한 신앙같은 생각 바꿔'
[화이팅 뉴스] 배우 최일화 '아내의 말 한마디로 연극에 대한 신앙같은 생각 바꿔'
  • 이수진 기자
  • 승인 2016.08.23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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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이수진 기자] 회장님, 아버지, 이웃집 아저씨, 경찰, 아들, 염전 주인... 어떤 역할이든 부드럽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으로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배우 최일화. 그에게는 오직 연극만을 바라보며 한 우물을 판 남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의 어린시절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노가다를 하셨다. 공부로 아버지와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 악착같이 공부했다. 명문대에 합격했다. 당시 돈으로 이 만원이 모자라 등록을 포기했다. 꿈이 무너졌다. 삶이 우울했다.

대학 대신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취직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연극을 공연했다. 연극을 보고 난 후 연극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저게 연기라면 나도 하겠다. 연극 쉽네.”

연극을 시작한 지 이삼 년 만에 겨우 대사 몇 마디로 무대에 섰다. 대사도 없이 서는 때도 있었다. 그가 연극을 하면서 주로 들은 말은 연기지도가 아닌 이런 말이었다.

“연기 그만 두고 막노동을 하거나 탄광에나 가라.”

다른 동료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나가는 동안에도 무대에 남았다. 그것도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주로 연극 포스터를 붙이거나 표를 팔고 카페에 연극전단을 비치하러 다녔다. 연기보다 무대를 꾸미고 소품을 제작하는 ‘일꾼’이나 조수에 가까웠다. 마흔세 살까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은 놓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와 잡일로 몸은 피곤했지만 개인 연습을 십 년 넘게 하며 때를 기다렸다. 마음에 분노가 쌓이기도 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서른여덟 살에 동료배우와 늦은 결혼을 했다. 아내가 삼 년 만에 연극을 보러 왔다. 아내는 장미꽃을 건네며 말했다.

“자기 연기가 참 편안해.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무대로 옮긴 것 같아. 집에서나 무대에서나 한결 같아.”

아내의 인정을 받는 것 같아 행복했다. 그만큼 연기를 자연스럽게 한다는 말로 들렸다. 기쁨도 잠시, 아내가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며 진심이 담긴 말을 했다.

“배우는 집에서 말하는 것과 무대 위에서 말하는 게 달라야 하는 거 아냐? 무대에선 연기를 하는 건데 어떻게 평상하고 똑같은 거야.”

그는 그날 밤 잠을 못이루었다. 아내의 말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오랜 시간 자신이 쌓아 온 연극에 대한 신앙 같은 생각들을 조금씩 내려 놓았다.

쓰레기청소, 상하수도 공사, 도로정비, 지하철 공사장 인부, 십오 년 간 찹쌀떡 장수, 포장마차, 세 번의 탄광촌 인부...

그가 배 고픈 연극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아르바이트는 이렇게 많았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고 아이도 있고 아버지도 누워 계시는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늘 맘이 편치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선배가 같이 일 하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누군가의 소개가 아닌 직접 방송 작가나, 감독에게 직접 섭외를 받고 싶었다. 수입이 없어 고생해도 낙하산은 싫었다.

노력하면 쨍하고 해 뜰날 온다고 했던가. 마흔네 살에 뜻밖의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상을 받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좋아서가 아니라 가족들을 그동안 고생시킨게 미안해서였다.

상을 받고 ‘삼류배우’라는 연극작품에 주연을 맡았다. 최일화를 보러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죽지 않을 만큼 연습했다.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 빠졌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

“저기 산 송장 지나간다.”

연극이 잘 됐다. 영화 감독과 피디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마흔일곱 살에 티비에 데뷔했다. 방송이나 영화에도 출연하며 얼굴을 세상을 알렸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연기와 때로는 부드러운 연기로 때로는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연기자로 대중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그의 빛나는 연기력은 연극이라는 한 우물을 파면서 얻은 다양한 경험과 감성에서 나온 내공이 아닐까. 

이 내용은 8월 18일 자 한국일보에 보도된 배우 최일화의 인터뷰를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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