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그림책, 볼수록 슬퍼지는 이유
권정생 그림책, 볼수록 슬퍼지는 이유
  • 북데일리
  • 승인 2008.06.0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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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산불이 났습니다.” 이 책 <엄마까투리>(낮은산. 2008)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불은 산에 있는 꽃이며 나무를 태워버립니다. 동물은 그나마 멀리 달아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런데 까투리네 가족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엄마 까투리에게는 아홉 마리 꿩 병아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길을 피해 이쪽저쪽으로 달아나려고 해도 얄밉게도 불길이 그 앞길을 가로 막습니다. 더구나 종종걸음을 하는 꿩 병아리들 때문에 불길을 피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과연 까투리네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이 그림책은 볼수록 속절없이 슬퍼집니다. 그러면서도 공허한 마음을 흔드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사랑 때문입니다. 엄마 까투리는 아홉 마리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온 몸으로 감쌉니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습니다. 아홉 마리 새끼들에게 엄마 품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이로 인해 자신의 몸이 비록 검게 타들어갔지만 아홉 마리 새끼들은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산에 사는 까치네 가족이나 마을에 사는 우리네 가족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엄마의 사랑 없이는 아이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만약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다면 가령 이 책에서 볼 수 있듯 엄마 혼자 날아가며…생각만하여도 아찔합니다. 새끼들이 위험천만한 불길의 공격을 당하리라는 것을 불을 보듯 분명합니다.

하지만 엄마 까투리가 그렇듯 우리네 어머니들도 자식을 위해 스스럼없이 희생합니다. 우리 집도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꼭 어렵다고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난 때문에 먹는 것이 늘 부족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입맛이 없다고 설레설레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던 까닭에 곧이곧대로 정말로 입맛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어머니의 진짜 마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소재만 다를 뿐이어서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미묘한 감정은 권정생이라는 작가의 울림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강아지똥>으로 널리 알려진 동화작가입니다. 평생을 5평짜리 오두막에서 병마와 함께 살다간 그가 보여준 삶이 눈물 나게 했습니다. 아직도 살아생전 그가 빨래를 너는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어디에서 이런 놀라운 힘이 생겨났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책에 나와 있듯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이 책은 “좋은 그림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작가의 소박함이 한결 마음을 부드럽게 했습니다. 그가 떠나고 없는 이 세상이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임재청 시민기자 ineverl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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