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물미해안에서 보내온 `시인의 편지`
가을, 물미해안에서 보내온 `시인의 편지`
  • 북데일리
  • 승인 2005.11.0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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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시인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2005. 랜덤하우스중앙)를 받아들고 잠 못 이룹니다.

겉장 “행간 속에 노래를 피워 올리는” 이라는 친서에서 수연산방 솔 향이 알싸하게 전해옵니다. 장통교에서 모전교로 이르는 개울길을 걸으면서 ‘저 물이 한강으로 스며들어 서해로 흘러가다 에돌아 남해까지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 가만히 물속에 비춰봅니다.

담벼락을 붙들고 붉게 울고있는 마삭줄이며, 길섶에 핀 개망초를 따라 한들한들 걷다보니 덕수궁 돌담길입니다. 돌담 모퉁이 의자에 앉아 에돌아 온 편지를 열어봅니다.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구절을 읽으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앵강의 급류 속으로 빠져드는 듯합니다.

그렇게 물미 삼십릿길은 구랭이처럼 불혹의 허리에 달라붙는데, 차마 그곳에 가보지 못하는 심사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성복 시인으로 하여 ‘서해’를 마음속에 남겨두었는데, 이제 ‘남해’까지 마음속에 묻어두고 파도소리만 애타게 듣습니다.

생태가 쾡한 눈의 동태가 되었다가, 잘 말려져 명태가 되었다가, 스스로 가슴을 너덜너덜 풀어헤쳐 누런 황태가 되더라도, 진짜 진한 삶의 국물이 우러나오는 시인이 있어 행복합니다.

“장마 이미 그쳤다니 햇살 끝/더 여물어졌겠네요./따글거리는 가을볕 받으며/오래 접어두었던 마음도/뽀송뽀송 펴 말리고 싶은 그런 날//늦게까지 오래 오래/그대와/누리겠습니다.” 보내주신 ‘가을 엽서’도 잘 받아보았습니다.

가포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고 했지만, 신경림 시인은 “남해의 멸치처럼 해맑고, 절벽에 꽂히는 별빛처럼 아름다우며, 폭포처럼 곧고, 칼집처럼 깊은 시인”이라고 합니다.

유배지 노도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치욕을 곱씹으며 칼을 베고 누웠더니, 진시황의 목을 따러 길 떠나는 형가처럼, 아버지 대신 전장에 나가는 목란처럼 발해의 홍라녀를 찾아갑니다. 아름다운 홍라녀 이야기에 붉어진 마음, 미타호를 적신 후 다시 남해로 유유히 흘러듭니다.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지난 여름 푸른 상처/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빛으로 물드는 노을/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그대 향한 그리움 밤새 밀물 져 파도치더니, 물미해안 삼십릿길 미역줄기처럼 흔들리다가 손 흔들다가 빨갛게 물드는 모습 보입니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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