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팅 뉴스] 한 부장판사의 유일한 친구는 노숙자였다
[화이팅 뉴스] 한 부장판사의 유일한 친구는 노숙자였다
  • 이수진 기자
  • 승인 2016.08.07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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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이수진 기자] 시간이 멈춰버린 집이 있었다. 신문들이 삭아서 만지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집. 한 남자가 삼십 여년 동안 오직 신문을 받아보며 세상을 내다보았던 집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남자는 오래 전, 가택연금을 당했다. 집에 갇히기 전에는 부장 판사였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갇힌 몸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남자는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밖으로 나오는 법을 몰랐다. 시간을 건너뛰고 나온 세상은 공포였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남자를 세상으로 이끌어줄 가족도 없었다. 80이 넘은 남자가 선택한 일은 아파트 경비였다. 남자는 평소 시집을 가지고 다니며 읽고 틈틈이 시를 썼다.

남자는 어느 날 외로운 죽음을 택했다. 장례식장은 텅 비었다. 남자와 함께 일했던 경비아저씨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쓸쓸한 장례식장에 갑자기 30여 명이 우르르 몰려 왔다. 나름대로 깔끔한 차림이었지만 노숙자임을 알 수 있었다. 노숙자들은 빈소에서 밤을 새웠다. 조용히 있었다. 조는 사람도 없었다. 식사도 하지 않으려 했다.

“평소에도 이 분에게 밥을 얻어 먹었는데 가는 날까지 얻어 먹을 수는 없습니다.”

노숙자들은 발인 날, 화장장까지 함께 했다. 그리곤 각자의 길로 뿔뿔히 흩어졌다. 남자의 마지막을 지키는 유일한 가족들이었다

노숙자들이 남자의 장례식장에 온 이유는 뭘까. 남자는 평소에 노숙자들을 집에 불러 밥을 함께 먹었다. 경비원의 적은 월급으로 누군가에게 밥을 해먹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더구나 주상복합오피스텔이라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도 감수한 일이었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노숙자들이 남자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지켜주었다.

이 글은 유품정리사가 고인들의 삶의 흔적을 정리하면서 배운 삶의 의미를 기록한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김새별 지음. 청림출판. 2015)에 나오는 이야기다.

함께 밥 먹을 사람은 많아도 함께 외로움을 나눌 사람 만나기는 어려운게 사람 관계다. 남자와 노숙자들은 밥을 핑계로 서로의 외로움을 달랬으리라. 세상의 잣대로는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친구 아닐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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