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책]니체, 릴케, 프로이트를 사로잡은 여신
[숨은책]니체, 릴케, 프로이트를 사로잡은 여신
  • 북데일리
  • 승인 2008.05.06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데일리]친애하는 로셀리니 씨, 당신의 영화<무방비 도시>와 <전화의 저쪽>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만일 스웨덴 여배우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서슴지 않고 달려가 선생과 함께 영화 만들 용의가 있습니다. 저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지만 이탈리어는 티 아모(Ti Amo)밖에 모른답니다.

세계 유명 배우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이 이탈리아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영화를 보고 격렬한 감동에 휩싸여 쓴 편지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남편과 자식, 미국에서 쌓아올린 명성과 재산 등 가진 것 전부를 버리고 한 달 뒤 감독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유명인사들의 사랑이야기를 모아놓은 <빠져들다>(2003. 좋은생각)에 실려있는 이야기다. 티 아모는 영어로 하면 ‘I love you```` 이다. 사랑에 빠진 순간, 삶은 다시 시작된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 위인들과 세계 명사들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책을 펼치면 그 연인들 사이로 빠져든다.

이 책은 단테와 베아뜨리체, 보들레드와 잔느 뒤발,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도스토예프스키와 안나, 백석과 자야, 이중섭과 야마모토 마사코, 천상병과 목순옥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사랑을 소개한다. 연예인 스캔들에 눈귀가 가듯이 유명인사 41쌍의 연애를 엿보는 재미에 책이 쉽게 넘어간다. 다음은 주목할 만한 사례들.

- 쌀쌀한 날씨에 하반신은 꽁꽁 얼어버리지만 상반신은 품에 안겨있었기에 꼼짝하지 않고 밤을 지새웠던 신동엽 시인의 짝 인병선

- 영화 <글루미 선데이>처럼 셋이한집에 살았던 마야코프스키와 브릭부부의 삼각관계

- ‘이 세상으로와, 나의 연인이 되어주어 기뻐요.’라고 채플리의 고백을 받은 우나 오닐

- 어린 시절 성학대의 상처를 이해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사랑방식을 모두 받아준 레너드 울프

- 세상 사람들의 줄기찬 비난에도 열렬히 서로를 사랑한 존 레논과 오노 요코

- 충실한 벗이면서 연인이지만 범접할 수 없는 사랑의 대상으로 정신적 사랑만 한 브람스

- 18년 동안 펜팔을 하며 사랑에 목숨을 걸고 그 사랑으로 죽은 발자크

그 가운데 단연 마음을 휘어잡는 인물이 있다. 당대 유럽 최고 지성들과 사귀며 자유롭게 사랑을 하였던 루 살로메. 니체는 살로메에게 청혼을 하나 거절당하자 절망에 빠지며 프로이트의 서재에는 그녀 사진이 늘 걸려있었고 세계 문학사상 가장 고매한 정신이라는 릴케는 14살 연상인 살로메에게 반해 이렇게 편지를 쓴다.

“저는 기도하고 싶은 심정으로만 당신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신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만 당신을 열망했습니다.“

새로운 젊은 연인이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일흔여섯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로메는 ‘사랑의 신’처럼 살았다. 어떻게 니체, 릴케, 프로이트 등 수많은 사람의 연인으로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지은이는 이렇게 쓴다.

“자유로운 사고와 기존 도덕과 관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아를 추구하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그녀에게 향하게 했던 것이리라.”

사랑, 생에 주어진 가장 어려운 숙제에 오늘도 머리를 끙끙 싸매게 된다. 애인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누구에게나 힘든 사랑이지만 하나 분명한 건 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산다는 것.

누구나 사랑을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이 험한 세상, 부디 인연을 만나 니체가 루 살로메를 보고 처음 한 말이 툭 튀어 나오길 바란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내려와 여기서 비로소 만났지요?”

[이인 시민기자 specialin@hanmail.net]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