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힐링과 거리가 먼데 읽고 나면 괜히 속 시원한 정체 모를 에세이.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민음사.2016)에 대한 소감을 한 줄로 말하자면 그렇다. 책은 뉴타운 월세 아파트 주민이자 두 아이의 아빠, 나이 마흔에 접어든 중년 남자의 ‘헬조선 헐뜯기’다.
예컨대 멘토 전성시대에 ‘창업 멘토, CEO 멘토, 부동산 멘토, 투자 멘토’ 등등 멘토를 직업으로 삼고 강연료를 받는 이들에게 쏟는 질타는 정말 필터 없는 헐뜯기다. 그는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거야’라는 식의 일반론을 내뱉는 꼴을 보면 반사적으로 역겨움을 느낀다며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진부한 조언을 두고 도대체 요점이 무엇인지 반문한다.
솔직한 저자의 감정배설은 그 나물에 그 밥인 성공사례를 방영하는 텔레비전을 보고 누구나 느꼈던 감정, 입안에 맴돌았지만 차마 뱉지 못했던 말을 대신한다. 실상 연사들의 성공담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전제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우리가 처한 헬조선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 안 되는’데 말이다.
이어 멘토의 강연에 모인 청중에게 당부하는 대목도 실소를 터뜨리기에 충분하다. 익숙한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져서다.
“청중이 바라는 것은 대단한 가르침이 아니다. 그저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거다. 뱀을 삶아 먹고 정력이 강해지길 기대하는 사람처럼. 그런 허깨비 같은 강연을 들으면서 제발 메모하지 않으면 좋겠다. 필기하지 않아서 기억나지 않는 지혜는 필기해도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책이 이런 조소하는 내용만으로 가득 찼다면 읽다가 지치기 마련이다. 다행스럽게도 책 곳곳에는 웃음을 유발하는 공감요소가 있다. 이를테면 대형 할인 마트에 존재하는 암묵적 ‘카트 예절’이다. 특히 저자는 드리프트와 올라타기를 시쳇말로 ‘병맛’(말도 안 되는)이라 말한다.
드리프트는 카트를 밀다 급격히 코너링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카트 운전에 스릴을 찾은 행태를 꼬집었다. 또 초등학생과 아저씨들이 하는 위험천만한 꼴불견으로 올라타기를 꼽았다. 한쪽 발을 카트에 얹고 다른 발로 지면을 밀어 속도가 붙으면 올라타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원하는 대로 뜯어지지 않는 과자 봉지에 시달리기도 하고 텃세 심한 테니스 클럽에 섞이려고 노력도 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자조 섞인 까칠까칠한 그의 볼멘소리는 그래서 더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