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오싹`하게 만드는 `조선 살인사건`
`등골 오싹`하게 만드는 `조선 살인사건`
  • 북데일리
  • 승인 2008.04.16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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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1788년(정조 12) 정월 초 한 남자가 사람의 붉은 창자를 둘러메고 수령이 있는 동헌을 바라보며 꿇어앉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남자의 이름은 윤항. 아버지 윤덕규가 서얼 친족에게 맞은 뒤 38일 만에 사망하자 그는 복수를 위해 원수를 죽였다. 이어 배를 가르고 간을 꺼내 씹은 뒤 그 창자를 둘러메고 자수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후기 끔찍한 복수극을 펼친 윤항은 과연 어떤 벌을 받을까. 바로 그의 죽은 아버지가 `폭행치사였느냐, 병환치사였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달라졌다. 정조의 명에 의해 치밀한 재조사가 이루어졌고 결국 윤항의 아버지는 폭행치사로 결론이 났다. 원수의 붉은 창자를 허리에 둘렀던 남자는 석방됐다.

<미궁에 빠진 조선>(글항아리. 2008)은 이처럼 과학수사에만 머무르지 않는 재기를 보인다. 죄에 대한 논란과 아울러 사적 복수가 어느정도 정당화됐던 당시의 시대상까지 소개하며 이 사건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조선후기 민간 살인사건과 과학수사를 담은 이 책은 국정 전반에 관한 매일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일성록`의 범죄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18~19세기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14가지 살인사건을 선정해 담아냈다. 특히 수사관이 단서를 잡아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 왜 살인이 일어났는지를 규명하는 모습, 그것이 조선 사회의 변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을 흥미롭게 재구성하고 있다.

범죄사건은 시대의 가장 솔직한 표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복수 살인 외에 정부가 백성들에게 강제로 환곡을 환수하려다 벌어진 살인사건, 음택풍수 때문에 빚어진 살인, 음주문화의 급속 확산으로 인한 구타 살인, 과부보쌈의 유행 때문에 빚어진 비극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미신 때문에 어린이 상해, 살인범죄가 끊이지 않았다는 대목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당시 어린이의 신체일부가 병을 낫게 한다는 미신이 횡행했고 아이의 무덤을 파헤치거나 유괴하는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죽은 아이의 무덤을 파서 팔을 자른 자가 있는가하면 수종으로 고생하다 어린이의 피가 악질에 좋다는 말을 듣고 노변에서 세 살 영아를 유괴한 남자도 있었다. `무지`가 엄청난 비극을 불렀던 셈.

이처럼 이 책은 조선후기 과학수사의 흥미로운 내용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다양한 사회풍경 역시 자세하게 엿볼 수 있게 배려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편, 저자 유승희 교수는 서울시립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18~9세기 한성부의 범죄 실태와 갈등양상-일성록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 인문과학연구소 조교수로 있으며 조선시대 사회사를 연구하고 있다.

[하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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