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미국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100년 전 미국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 북데일리
  • 승인 2008.04.1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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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비즈니스 프렌들리’.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 내건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이다. 이는 기업 활동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풀고, 모든 정책을 친시장주의 및 친기업주의 관점에서 펼치겠다는 의미다.

미국에도 이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워 당선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바로 22대(1885~1889년), 24대(1893년~1897년) 대통령을 지닌 그로버 클리블랜드다.

신간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추수밭. 2008)에 따르면 그는 선거운동 중 산업계 대표들에게 “제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여러분이 사업을 하는 데 어떤 어려움도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당선 후 그는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대표적으로 그가 취임 첫해 부자들이 지니고 있던 채권들을 원래 가격보다 비싼 값으로 되산 일이 있다. 무려 4,500만 달러를 쓸데없이 들인 사건이다.

하지만 힘없고 가난한 자는 외면 당했다. 가뭄으로 어려움에 처한 텍사스 농부들이 곡물 씨앗을 살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고작 10만 달러가 아까워서였다.

이런 클리블랜드의 왜곡된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당시 미국의 빈부격차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 전부터 정부와 법의 비호아래 재산을 축적했던 J.P 모건, 존 D.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제임스 멜런, 제이 굴드 등의 거부들은 더욱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 뇌물이 횡행하는 정경유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면 노동자들은 저임금, 더위와 추위, 때로는 인디언들의 습격에 시달렸다. 농민들의 경우 농작물 값은 내려가는데, 농기구 가격과 운송비는 치솟는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빚 때문에 땅을 몰수당하고 길바닥에 나앉는 농민이 속출했다.

당시 유행했던 ‘강도 남작(robber baron)’이라는 말은 당시 상황을 집약해 보여준다. 이는 19세기 후반 유력 사업가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들이 중세 귀족인 남작들처럼 강력한 권력을 토대로 강도와 같은 탐욕스럽고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다고 해서 생긴 명칭이다.

저자 하워드 진은 이를 두고 “정부는 타당하게 행동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부자들의 이익을 위한 봉사단체나 마찬가지였다”며 “정부의 목적은 상층계급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평화롭게 조율하고, 하층계급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며, 경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이 같은 클리블랜드의 왜곡된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계급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이 중 1886년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벌어진 ‘헤이마켓 사건’이 대표적. 이는 무정부주의자들의 평화 집회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하게 탄압에서 시작됐다.

5월 4일, 노동자들의 지도자였던 오거스트 스파이스를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은 약 4,000명의 청중에게 노동자의 봉기를 주장했다. 연설 중 경찰이 들이닥쳤고, 그때 폭탄이 터졌다. 이로 인해 경찰 66명이 부상당했고, 그중 7명이 목숨을 잃었다. 분노한 경찰은 총격을 가해 200명의 사상자를 만들었다.

정부는 폭탄을 던진 용의자 8명을 잡아 들였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한 채였다. 하지만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곧 판결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카고에서만 2만 5,000명의 사람들이 행진을 벌였다. 결국 이를 계기로 수많은 파업이 곳곳에서 일어난 1886년은 ‘노동자 대반란의 해’로 기억된다.

이처럼 정도를 넘어서는 일은 반드시 역풍을 맞는다. 현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재벌만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실정을 예방하기 위해 한번쯤 유념해 볼만한 역사적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한편 책은 미국 역사의 추악한 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시기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때부터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까지다. 하워드 진이 25년 전 낸 <미국 민중사>(시울. 2006)를 좀 더 쉽게 풀어쓴 입문용 <미국 민중사>라 할 수 있다.

<헤이마켓 사건을 묘사한 삽화>

(사진제공=추수밭)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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