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한국소설] 봄이 익는 시간
[내사랑한국소설] 봄이 익는 시간
  • 북데일리
  • 승인 2008.04.1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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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일년 중 가장 따뜻한 날의 볕이 내려올 때, 그 아래 누가 있어야 가장 따뜻한 풍경이 될까 생각해본다. 청춘보다는 아기가, 아기보다는 노인이, 노인 중에서도 할머니가, 봄볕이 가장 내려앉고 싶어 하는 사람일 것이다.

세상엔 사계절이 있으나 사람은 한평생 거의 겨울을 산다. 계절의 봄날도 짧거니와, 인생살이 봄날의 순간들은 더욱 짧다. 내 생각에 인생의 진정한 봄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찾아온다.

자기 속에 봄빛가득한 마당을 하나씩 두고 시대의 냉혹함을 녹여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이고 눈물겹고 힘이 된다. 정지아의 <봄빛> (창비. 2008) 을 발견한 건 큰 다행이다. 세월과 시대와 개인이 이렇게 조용하고도 뜨겁게 만나는 것을 보기란 드문 일이다. 열한편의 모든 작품을 얘기하고 싶지만, 원본을 만나는 즐거움을 빼앗지 않기 위해 조금만 소개한다.

봄, 지금은 화해의 시간 - <봄빛>

표제작 <봄빛>에서 세월과 화해해야하는 인간의 숙명을 읽는다.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아들은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고향집을 찾는다. 아들의 꿈과 아버지의 소원은 많이 달랐고, 그로인해 두 사람은 오랜 세월 등을 돌리며 살아왔다. 서로 상대의 삶을 버리는 마음으로 버티다보니 세월은 많이도 지나가버렸다.

이제 아버지는 아들과의 냉전에서 한 걸음 비껴나 봄볕 가득한 개나리 아래 앉아있다. 아버지의 기억은 사라졌고 그동안의 갈등의 시간은 허무하기만 하다.

어머니도 세월 따라 모질어졌다. 아들에게 어머니의 변화는 고향이 없어진 것과 같다. 어느새 부모는 아들의 기억 속 모습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가족들은 병원에 가서 아버지의 뇌의 노화가 많이 진행되었음을 듣는다. 아버지는 말이 없다. 여덟살에 가장이되어 ‘그 어둠속에서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끌어냈던’(p.46) 아버지는 지금도 그런 것인지 속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들에게 높이가 아득한 산이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또 핏대를 올리며 싸우던 부모는 금세 머리를 맞댄 채 잠이 든다. 후면경으로 그걸 보는 순간, 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고리대금업자 같은 비정한 세월이’(p.47) 자신과 부모 모두의 생에 대해 수금을 시작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들의 생명을 키워냈듯 이제는 아들이 부모를 품고 생명을 놓는 일까지 지켜봐야하는 냉정한 생명의 법칙이 그들 앞에 놓여있다.

계절의 순환처럼 생명의 이어짐도 그러하다. 우리는 남은 생을 세월에게 조금씩 상환하며 살고 있다. 비정한 얼굴로 달려오는 세월을 넉넉히 안아줄 힘을 소설 <봄빛>에게서 공급받는다.

한 생이 다른 한 생에게 하고팠던 말들 - <세월>

삶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독백으로 가득차있다. 한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속말을 하는 것이다. 단편 <세월>은 빨치산이던 남편과 함께 질고의 개인사와 역사를 살아냈던 아낙이,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을 앞에 두고 하는 혼잣말 형식의 소설이다.

아낙은 시대의 못남을 거부했던 남편을 따라 산에 들어가는데, 그로인해 아이도 잃고 남편은 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후 주인공들은 아이에게 그리고 살아남은 서로에게 죄를 짓고, 그 댓가로 ‘세월의 감옥’을 사는 마음으로 생을 보냈다. 알고 보면 인간의 삶이란 게 그런 거였다.

남편은 지금 콩 볶듯 총알이 날아다니고, 모닥불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동지들이 있는 지리산 깊은 곳을 거닐고 있는지 모른다.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서 도란도란 책 얘기도 하고, 아기의 보들보들한 발도 만지며 장독대의 봄 햇살을 바라보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을 것이라 아낙은 믿는다.

비록 인간의 혁명은 세월의 혁명보다 힘이 한참 약해서 지금 그들은 초라한 모습으로 늙어있지만, 그러나 초라한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온기의 혁명이 여기에 있다. 세월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라.

남편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한 개인의 푸른 날들의 흔적을 가져와서 지금의 텅비어가는 노년의 삶에 가득 부어주는 일이고, 동시에 여러 개인들의 흔적을 모은 것, 즉 역사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인간은 세월처럼 또렷하게 자기 길을 찾아나가지는 못한다.

노화로 잃어버린 기억은 회복이 어렵다. 젊은 날 그 많은 비극들을 이겨내며 살아왔건만, 그 훈장들을 찾을 길이 없다. 더 이상 이겨낼 수 없는 비극의 시간이 온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삶의 진실 한 가지를 발견한다. 우리는 더 이상 승리는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보다 더 크고 값진 위안을 서로에게 줄 수 있다. 우리 생은 표면적 결과보다 그에 대한 의미의 부여가 더 중요하다.

늙음과 기억상실에서 이야기는 매듭을 짓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기억상실은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서글픔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파릇했던 한 때를 향해 아직 꺼지지 않은 정신의 불꽃을 모두 모아 달려가는 역주행 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무너져 내리는 정신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작가는 더욱 집중력이 높은 의식 활동으로 환원시켜놓고 있다. 이것은 늙음을 포함하는 삶 전체에 대한 매우 강도 높은 긍정이며, 사람의 생은 어느 시기적 구분에 의해 그 빛남이 강해지거나 약해지거나 하는 게 아니란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생을 하나의 솥으로 본다면, 그 솥에 골고루 불길이 닿아 덥혀지도록 아궁이 속 장작을 잘 섞어주는 일을 소설집 <봄빛>이 해냈다.

소개한 작품 외에도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껴 읽은 작품들이 많았으니, 아련한 문학의 아지랑이를 느끼고 싶으면 <못>을, 여자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하고 싶은 이들은 <스물셋, 마흔셋>을 읽어야한다.

그리고 나는, 그리 길지 않은 작가의 말을 읽으며 열한 편 내내 잘 참았던 울음을 쏟아낸다. 세월이라는 숫돌에 무수히 자기를 갈아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을 그녀가 해주었기 때문이다. 서점에 갈 때면 이 책의 표지를 남몰래 한 번 쓰다듬고 지나가고 싶다. 내가 받은 감동을 표현할 방법이 그것 말고도 많았으면 좋겠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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