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쌤의논술돕는책] 이기주의 욕하는 당신은 누구?
[신쌤의논술돕는책] 이기주의 욕하는 당신은 누구?
  • 북데일리
  • 승인 2008.03.3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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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가 발붙이기 힘든 사회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며 부정적인 어감 또한 심각하다. 학교나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개인주의자라는 레테르를 붙인다면 그 조직은 그 사람을 왕따 시키겠다는 선언을 하는 셈이다.

한국 사회 같은 패거리 문화 사회에서 왕따는 곧 사회적 죽음이다. 따돌림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인지 실제 심정적으로는 이기주의에 끌리면서도 공개적으로는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를 욕하는 사람들이 의의로 많다. 대한민국에서 “나는 개인주의자요”라고 밝히는 일은 약간 과장을 덧붙이면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하는 것 못지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는 도덕 교과서도 한몫했다. 자신이나 가족의 행복보다는 공동체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대인이나 군자의 삶과 그렇지 못한 소인의 삶을 대비시켜 충과 효, 애국이나 애족의 가치관을 어려서부터 체화시키도록 강요하고 있다.

군사 정권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로 인용하는 것이 논어나 맹자 같은 동양 고전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동양 고전에서도 개인주의 전통을 얼마든 찾을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책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웅진지식하우스. 2006)이 바로 그렇다. 저자 김시천은 중국 전국시대에 ‘위아’설을 주장했던 양주를 복권시키면서 동양적 개인주의 전통도 함께 복원하고 있다. 소인배라는 말에는 경멸의 뜻이 담겨 있지만 그는 소인을 근대 산업 혁명 이후의 서양의 개인 개념과 동렬에 올려놓는다.

양주의 위아설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왜 나를 위해 사는 이기주의가 뭐가 나빠?” 양주는 묵가와 맹자 모두에게서 협공을 당했는데 그 이유는 ‘나를 위해 살자’는 그의 주장이 당시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기주의자가 다수인 사회에서 권력은 공동체주의자가 잡는 아이러니가 종종 발생한다. 공동체주의자는 숫자는 적어도 뭉칠 수 있고 명분 싸움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그 힘은 파편화된 개인을 언제나 압도하기 마련이다.

저자에 따르면 원래는 공자와 맹자 사상에서도 개인주의의 면모를 읽을 수 있었는데 후세 권력을 쥔 사람들이 자기들의 권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맹 사상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역사의 승자들은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하고 개인주의자를 이기주의자로 몰아 세워 공동체의 적이라고 폄하해 왔다. 칼 포퍼의 말을 빌면 이것은 전형적인 닫힌 사회다. 그런데 우리가 지향하는 시민사회는 닫힌 사회가 아니다. 시민공동체라는 말 자체에도 담겨 있듯이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절묘한 조합 아니겠는가?

이 책 역시 개인주의를 긍정하고 있지만 나의 이익 때문에 타인도 피해를 보는 이기주의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어니다. 그는 개인이 주체로 느슨하게 결합된 시민공동체를 사회적 이기주의로 부르며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개인과 함께 책 전체를 관통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욕망이다. 그는 포스트모던 철학자처럼 욕망을 긍정한다. 양주는 인간의 본성인 ‘정’과 ‘욕’이 누구나 타고나는 동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본성이나 욕망은 신분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다고 한다. 인간이 평등한 이유는 존엄성이나 천부 인권에만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낮은 수준의 욕망에도 있다.

그러고 보니 저자가 동양철학의 하이브리드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개인주의의 전통을 동양 고전에서 찾고자 하는 이 책도 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실존주의라는 현대 서양 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 그는 여느 포스트모더니스트처럼 인간의 일상이나 욕망을 과감하게 긍정하고 있다. 욕망 자체를 부정할 게 아니라 좋은 욕망과 나쁜 욕망을 구별해서 좋은 욕망은 당당하게 추구하자고 주장한다.

앞서 박노자의 서평에서도 밝혔지만 개인의 가치를 비로소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신적 근대화를 최근에야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몸만 근대화했지 정신적으로는 국가니 민족이니 민중이니 통일이니 하는 거대 담론 속에서 허우적대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세상이 달라졌다. 일본 소설의 초강세와 경제학과 심리학이 융합된 행동경제학의 급부상, 자기계발서가 서점가를 장악한 것을 보면 이제는 누구나 개인의 중요성에 공감을 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집단이 소속 구성원의 생존을 책임져주던 시대(그런 시대가 우리에게 있었을까?)와 달리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살아남기 경쟁을 벌여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민족이나 국가 등 집단의 힘이 컸던 한국 사회에서 최근의 개인주의 열기를 통해 균형을 잡는 측면도 크다.

하지만 개인이 돈 벌 자유는 존중되어도 개인주의 문화는 터부시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서구 같은 시민 사회에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념의 치열한 추구보다는 일상 속의 보수적인 문화를 문제 삼는 박노자 같은 이가 필자에게는 진정한 진보로 보인다.

이 코너가 논술 돕는 책이라는 꼭지니 만큼 정체성 유지 차원에서 한 마디 사족을 붙이고자 한다. 학생들은 동양철학을 서양철학보다 재미있어 하고 요지를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장자도 그렇고 대부분의 동양 고전들이 비유와 상징이 많아 아이들은 언어 영역 공부하는 데도 동양 고전들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동양 사회는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편견도 버릴 겸, 이 기회에 동양 고전을 열심히 읽는 것은 어떨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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