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희의연애잔혹사]⑦이상적인 엄마상?
[고윤희의연애잔혹사]⑦이상적인 엄마상?
  • 북데일리
  • 승인 2008.03.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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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엄마! 생일선물로 성형수술 해줄게!”

엄마의 육십세 번째 생일날 전화를 걸어 선심 쓰듯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검버섯을 늘 거울을 보며 속상한 듯이 “곧 죽으려나 보다. 검버섯은 저승사자가 얼굴에 피우는 꽃이야. 검버섯 보고 저승 데려갈 사람 구분한단다.” 하며 언제나 안타까운 듯 검버섯을 어루만졌었다.

그래서 나는 간단한 레이저 피부 수술과 지방 제거술을 해주겠다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됐다. 나이 들어서 철딱서니 없게 웬 성형수술이냐!”

엄마는 한 5년 전부터 얼굴에 여러 군데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는데도 내가 제안하자 선뜻 거절해버린다.

“뭐 어때? 여자는 늙어 죽을 때까지 예쁘게 살아야지 돼.”

“그건 그런데, 그래도 안 되겠다. 자식 시집 장가까지 보낸 엄마 주제에 얼굴에 어떻게 손을 대냐?” 엄마는 ‘엄마라는 이유’로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성형수술을 거절했다.

내가 어렸을 적엔 ‘엄마라는 이유’로 미니스커트나 진한 화장을 하지 않았고, ‘엄마라는 이유’로 술을 마시는 걸 참았고, ‘엄마라는 이유’로 밤늦게 놀러 다니는 걸 꾹 참았던 분이다. 지금의 내 모습을 미루어보면 우리 엄마도 참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바람 같은 여인이었음이 틀림없건만, 엄마로 살아온 근 40년 동안 우리 엄마는 참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여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엄마라는 페르소나’로 고지식해진 여인은 딸들에게 뜻 모를 주술처럼 자신처럼 살기를 늘 강요하고 잔소리해왔다.

“늦게 다니지마!”

“술 마시지 마!”

“미니스커트 입지 말고, 화장은 수수하게 해!”

“얌전히 집 안에 있다가 좋은 남편 만나 애 낳고 좋은 엄마, 좋은 아내 되는 게 여자로서는 최고의 인생을 사는 거야.”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 엄마 스스로도 그게 최고의 인생이 아니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다는 걸. 가끔씩 나의 분방하고 개 같은 제멋대로의 삶에 대해 한숨을 푹푹 쉬고 괴로워하면서도 그 한숨 안에는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질투의 한숨도 섞여 있었음을….

공지영 작가의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있는데, 소설 속에 등장한 엄마가 참 멋지다. 대학 입시를 둔 딸을 놔두고 연애에 빠지고, 밤늦게 술을 마시고 들어와 딸 앞에서 취한 채 마구 춤을 추고, “나는 너네 정말 소중하고, 사랑하지만 그래도 제일 소중한 건 나야!” 하고 선전포고 하듯 말한다.

소설 속의 엄마는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하고 성이 다른 세 아이와 한 집에 살고 있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당당한 멋진 엄마다. 나는 읽던 소설을 덮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왜 아빠랑 이혼하지 않았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빤한 대답이 돌아온다.

“니들 때문이지.”

까칠한 노처녀인 나는 금세 가시가 돋친다.

“핑계대지 마. 어렸을 때는 진짜 그런 이유로 이혼을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 들고 보니까 자식 때문에 이혼 못한다는 여자들 다 핑계야. 혼자 설 자신이 없는 겁쟁이 여자들이 애들 핑계 대는 거라고. 엄마 아빠가 이혼하기를 내가 얼마나 바란 줄 알어? 서로 사랑하는 모습 안 보여주고 아웅다웅 할퀴고 싸우는 부모를 보는 것보단 깔끔하게 갈라서서 한쪽 편 사랑만 받고 사는 게 훨씬 정신 건강에 좋다고!”

엄마는 충격을 받았는지 대답이 없다. 나는 속에서 알 수 없는 독이 올라와 한마디 더 보탠다.

“지금이라도 아빠 버려! 솔직히 엄마의 인생은 이용당한 거잖아. 한 남자에게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아빠한테 여자로서 원했던 사랑은 전혀 받지 못했잖아!”

충격 받은 엄마의 변명 같은 소심한 한 마디.

“이 나이에 어떻게 버려.”

“아마 아빠는 밥 때문에 엄마랑 못 헤어질걸? 그렇게 아침 저녁으로 공짜로 밥 해줄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서.”

엄마는 아마 전화를 끊고 울었을 것이다. 나도 전화를 끊고 울었으니까.

나이가 들고 내가 여자라는 걸 절감하며 살다보니 엄마의 인생에 울화통이 터지는 순간이 많아진다. 엄마의 희생에 고마움보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내 자신의 미래도 저렇게 될까봐 결혼하기가 싫어진다. 뭐 잘 났다고 희생을 미덕으로 알고, 딸들에게까지 그런 걸 가르치고 교본이 되려 할까?

엄마들은 알까? 딸들은 내 엄마들이 신사임당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을. 차라리 자식들 내던지고 어우동이나 유관순처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줬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을. 남편과 자식에게 인생 다 바치고 희생하고 늙어버린 엄마의 모습을 볼라치면 내 앞에 빚쟁이가 엄청난 부채장부를 들고 버티고 선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는 것을. 내가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지? 돈으로도 갚을 수 없고, 시간으로도 갚을 수가 없는데!

나는 절대 자식에게 부채장부를 쥐어주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내 멋대로 멋쟁이 쿨한 엄마가 되어야지 다짐한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엄마가 70이 되기 전에 성형수술을 하고 멋진 남자와 세계 일주를 하며 마지막으로 생애 최고의 찐한 연애를 즐겼으면 하는 것이다.

(드라마 ‘엄마’ 스틸 컷)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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