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⑪김사과 "실험, 지금부터가 시작"
[이젊은작가]⑪김사과 "실험, 지금부터가 시작"
  • 북데일리
  • 승인 2008.03.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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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김사과는 2005년 단편소설<영이>로 ‘8회 창비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이 20세였다. 그는 근래 보기 드문 최연소 등단자로 유명해졌다. 게다가 첫 장편소설 <미나>까지 주목 받았다. 이 작품에 대해 소설가 김영하는 이렇게 평했다.

“이상한 소설이 도착했다. `도착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소설이다. 간혹 어떤 소설은 작가를 앞질러, 작가도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어떤 운명을 탑재한 채,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처럼 이 세상에 나타난다. 다 읽고 나면 안온한 가짜 리얼리티의 세계에서 너무 오래 살아왔다는 생각에 머리가 띵해지고 주변이 문득 낯설고 기괴해 보인다. 정말 이상한 소설이다.”

김사과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때리는 선생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쉽지 않은 선택 후. 그는 혼자 짧지 않은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 솟구치는 분노와 의문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토해냈다. 세상에 대한 냉소와 애정이 끊임없이 반복 됐다.

“자유란 지난 시대의 낭만적 신화에 불과하다. 수정은 그런 종류의 자유를 믿지 않는다. 그녀가 믿는 자유란 남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녀는 독자적인 노선을 믿지 않는다.” - <사과> 본문

최근 김사과가 즐겨 찾는 다는 홍대 앞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가녀린 몸매에 감각 있는 옷차림이었다. 그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질)이름이 특이하다. 본명인가?

답)아니다. 본명은 방실이다. 사과란 이름은 내가 지었다. 신포도 이런 것을 떠올리다가 사과라고 지었다.

질)언제부터 글을 썼나?

답)글은 블로그가 처음이었다. 그곳에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했었다. 욕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그 후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 입학했다. 2004년 수업을 들으며 처음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질)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부담스럽지 않은가?

답)괜찮다. 어렸을 때부터 주목받는 것에 익숙하다. 난 늘 특이해보이려고 노력했다. 사람들과 다르게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부분이 나의 열등감이 됐다. 왜냐면 난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더욱 ‘그런 척’하는 것을 버리게 됐다. 또 나는 글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 난 괴로우면 글로 쏟아내면서 정리하는 스타일이다. 글이란 건 그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부풀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또 퇴고에 강박적이기도 해서 단문이라도 몇 십번을 고친다.

질)요시모토 바나나를 닮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답)난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체를 싫어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문체가 농도가 낮은 글이다. 그런 글은 읽기조차 어렵다.

질)창비와 김사과가 안 어울려 의외라는 사람들이 많다.

답)그런 얘기 들었다. 하지만 난 문예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을 마쳤을 때 창비에서 공모를 했다. 그래서 창비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창비가 나를 선택한 것이 의외일 뿐이다.

질)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선 땅이 어디인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정확한 뜻은 무엇인가?

답)인터뷰를 하다보면 말이 많이 와전되는 것 같다. 정확히 다시 말하자면 나는 항상 동서남북이 정리가 돼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위치인지 포지션을 확실하게 탐색한 후 움직이는 편이다. 그 인터뷰의 대답은 이런 뜻이었다.

질)문예진흥기금으로 여행을 가서 쓴 소설이 <미나>라고 알고 있다. 어떤 여행이었나?

답)등단작가들 중 문예진흥기금을 신청해 당첨이 되면 여행경비를 지원받을 수가 있게 된다. 8백만 원을 받았고, 프라하, 베를린, 뉴욕,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왔다. 5달 동안의 여행이었다. 혼자서 처음으로 하는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소설은 대략 2달 반 정도 걸려 썼다. 1달은 너덜너덜한 메모뭉치였고, 나머지 기간 동안 그 내용을 엮었다. 그 후 남은 시간은 미술관도 가보고 바닷가도 다니면서 놀았다.

질)2005년 봄 창비에서 등단한 <영이>란 단편소설은 어떤 내용인가?

답)그전까지 내 글은 많이 코믹한 편이였다. 하지만 <영이>를 쓰는 내내 난생처음으로 정색을 하고 썼다. 상당히 심각하게 쓴 글이었고 15일이 걸렸다. 퇴고도 거의 없이 죽 써내려간 소설이었고 그때 느껴진 감정은 나에게 참으로 각별하다.

질)어떤 작가를 좋아하나? 그 이유는?

답)나보 코보의 <롤리타>, <포르노그라피>를 좋아한다. 나는 시선이 나이든 남자를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읽고 나면 항상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소설 한 권에 보수적인 색채와 미학적인 느낌, 에로틱함과 정통스릴러 까지 담을 수 있다는 게 경이롭다. 아무튼 읽어봐야 안다.

질)스스로 고등학교 자퇴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등단하기 전까지 5년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무엇을 했나? 또 그 당시 본인의 부모님의 의견은 어떠하셨나?

답)학교를 자퇴하고 줄곧 혼자 지냈다. 생각도 많이 하고, 아무것도 안하면서 지냈다. 우리 부모님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신다. 아버지 연세가 많으신 편이다. 그리고 나 혼자이다 보니 내 의견에 많이 동의해 주시는 분들이다. 어머니가 책을 무척 좋아하시는 편인데, 그때도 어머니가 ‘좋으면 알아서 해라’ 하셨다. 그뿐이다.

질)‘날것의 대화체’라는 평을 들었다. 의도한 것인가?

답)정제된 대화보다 제어된 대화체를 선호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일상과 다른 말을 쓸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탈피해 보고 싶었고 한 글자 한 글자 효과를 생각하며 써넣은 계산된 부분이다.

질)2008년 동인 문학상 수상에 거론되었다는 데 소감이 어떤가?

답)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상 받으면 좋다. 돈도 벌고.

질)종교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답)종교는 본능이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이나 믿음은 생존과 관계가 없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열중한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지난 2006년 겨울 ‘서울전자음악단’공연을 갔었다. 그곳에서 어떤 에너지를 느끼게 됐다. 그것은 무언가를 넘어선 듯 알 수 없는 에너지였는데 그게 어떤 에너지일까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느낌을 이번 여행에서 박물관에 갔을 때도 느꼈다. 어떤 그림은 그냥 지나칠 수 있었는데, 어떤 그림은 전율이 오면서 그 자릴 떠날 수 가 없었다. 밴드 공연 때와 동일한 느낌이었다.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떤 감정적 열망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질)글과 말을 실험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실험을 말하나?

답)한국어, 영어라는 것 자체가 틀인 것 같다. 장르파괴를 계속 시도해 보고 싶고 새로운 문체도 만들어 내보고 싶다.

질)시를 쓴다고 알고 있다. 어떤 시인가?

답)난 소설보다 시를 더 잘 쓴다고 생각한다. 글도 처음부터 시를 썼다. 20편 가량 썼고 지금까지 3번 투고 했는데 계속 떨어진다. 이유를 모르겠다.

질)보여줄 수 있나?

답) 프라하, 여행하는 길거리 산책자의 슬픔

a sadness of the tripping street walker in Prague

 

말했다 수풀의 파랑

색깔은 침묵의 소리

빨강 오후 다섯 시의 이름

혀 아래 놓인 블루, 둥근 포석의 골드, 빙글 도는 실선, 발자국의 라임향, 타오르는 옐로우

걷는다 수풀 속의 산책자

아케이드를 지나 굽이치는 흰 손등을 발견

흩어지는 흰 손 반원으로 접어 깊숙이 행진

내일은 떠오르는 너의 입술

해 없는 햇살

가능했던 인사

벌어진 살갗 사이로 떨어지던 네 목소리

두 개의 탑 아래

멈춰서면 분수의 파랑

십자가의 휘어짐

납작해져 점점 밑바닥으로 까지 달라붙는 멋진 혈관 끝으로의 여행

먼지가 전차가 되는 시간까지

끊임없이 포석들 속으로 사라지는 발가락

노랑은 검정

달빛과 구분되지 않는 노을의 시간까지 빨강

빨강하고 외치는 황혼의 시각

몰려들던 구름

빛/ 가라앉기

눈물/ 운동화와 동격

천천히 닳아 없어지는 영혼 아직 내 주머니에 들어있다

네 머릿속에선 어디에서 어디까지 어떤 단어, 슬픔 속의 산책자

내가 가던 곳

여기

그날 귀를 기울이면 어디서나 들려오던 물결

매니큐어 냄새를 풍기던 우리의 작별

시끄럽게 내 귀를 괴롭히던 내 어깨를 짚은 네 손의 감각

이것은 길고 긴 시작

끝나지 않는 산책 천천히 슬픔 쪽으로 침몰

이마 위, 군림하는 노을

꼭지점을 방금 지난 해

새, 등 뒤에서 정지

질)소설<미나>에서 주인공 수정이 처한 사회-공간적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답)졸업을 할 것이고 돈도 벌어야 한다. 기자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대학원에 진학할지 또한 고민하고 있다.

질)소설<미나>에서 반복적이면서도 폭발적인 대사처리가 인상적이다. 어떤 호흡이었는지 궁금하다.

답)그런 호흡을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못견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 않아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로 생각이 바뀌었다.

질)좋아하는 작가는?

답)배수아 작가다. 작품을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사는 방식이나 생각이 흥미로워 관심을 갖게 된다. 그의 문체는 미문이다.

소설<미나>는 ‘어느 한 고등학생이 친구를 죽이다’라는 기사를 보고 난 후 작가의 상상에서 시작된 소설이라고 한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과잉입시경쟁사회를 냉혹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아웃사이더를 선택한 자신의 삶이 아팠다.”라고 글에 드러나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삶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왜 이렇게 책이 안 팔려요?”라며 활짝 웃는 그녀. 경계가 없어서 낯설지만, 같은 이유로 기대를 갖게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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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사진 - 김대욱 기자)

    [서용석 책전문기자 modernsigh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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