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⑩신용목 "시인의 눈은 별, 발은 땅에..."
[이젊은작가]⑩신용목 "시인의 눈은 별, 발은 땅에..."
  • 북데일리
  • 승인 2008.02.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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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는 한국 문학의 부흥을 위해 `젊은 작가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음율, 색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내기 작가들과의 `싱싱한` 만남을 통해 우리 문학의 미래를 가늠해 봅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시인 신용목은 두 개의 시선을 가졌다. 먼저 현상에서 아름다움 뽑아내는 눈이다. 그에게 자연은 끝이 드러나지 않는 시상의 원천이다. 흔해빠진 별도 그가 바라보면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이 되고, 강가에 가야금 소리가 울리면 ‘바람이 목을 놓고 울음을 풀어준’ 귀한 곳이 된다. 그저 먹음직스러울 뿐인 가을 감나무는 ‘한 주먹씩 노을을 쥔’ 그림으로 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젊은 시인(35)이라 부른다.

또 하나는 낮고 그늘진 곳을 응시하는 눈이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다.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노점상 등 주변부로 쫓겨나고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이다. 이름이 없는 그들을 시인은 일일이 마음에 담고 삭혀 하나의 시로 불러 준다.

이를테면 이국의 노동자에게 ‘허기가 허연 김의 몸을 입고 피어오르는 사발 속에는 빗물의 흰머리인 국숫발/ 젓가락마다 어떤 노동이 매달리는가’라고 묻는다. 노점상을 두고 ‘여자의 가난으로 구운/ 손바닥만 한 세상을 받아든 사람들은/ 기름방울처럼 길 위로 스며들었다/ 지하철 공사가 시작되고/ 버스 노선이 바뀔 즈음/ 겨울과 함께 그녀는 사라졌다’고 기억한다. ‘아무도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시인의 두 시선은 첫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 2004)부터 최근작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창비. 2007)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반응은 좋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4쇄까지 찍고, 표제작은 모 기업의 에어컨 광고 카피로도 사용됐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는 계간 ‘시작’이 주관하는 제2회 시작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줬다. 생애 첫 수상이다.

지난 19일 홍대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안경 너머로 시에 어려 있던 선한 눈이 보였다.

질)수상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답)의미 있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문학상들이 시 한 편 한 편만 보고 평가하는데, 이건 시집 전체를 보고 주는 상이잖아요. 그래서 더 기뻐요. 문학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고민하던 차였거든요. 지금까지 내가 문학에 대해 알고 있던 게 행여 오해는 아닐까 의심했어요. 문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확신도 없었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렇게 상을 받으니까 격려가 되고 자신감도 얻었어요. 문학이 어떤 건지 어렴풋하게나마 그림도 그려지고요.

질)이번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는 첫 시집의 연장선상이라는 평을 받는데요. 특별히 중점을 둔 건 없었나요?

답)전략을 가지고 글을 쓰는 건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요. 시인이라고 폼 잡고 ‘이번엔 이런걸 써봐야지’하는 게 싫고요. 그래서 딱히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둬서 쓰진 않았어요. 그저 관심이 가는 걸 썼습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으면 이런 게 있겠네요. 첫 번째 시집은 성장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많이 반영된 편이었어요. 이번에는 문학적으로 고민했던 내용을 더 집어넣었고요. 그래서 그런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는 평도 들었어요.

질)주변인에 대한 시선이 두드러집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답)문학은 기본적으로 좌파적 속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거든요. 인간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러려면 인간의 향기가 더 짙게 나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어요. 고통 받고, 상처입어서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요. 풀들이 잘렸을 때 더 깊은 향기가 나듯이, 그런 사람들이 인간 냄새를 더 많이 가지고 있거든요. 인간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작업이에요. 또 그들을 힘들게 하는 가해자와 맞서 싸우는 게 예술인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질)그와 관련해서 시작 말고 다른 활동도 하는 게 있나요?

답)그루터기라는 공연단체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신장병 어린이를 돕는 모임이에요. 신장병은 돈이 지속적으로 많이 드는데, 제도가 잘 안돼 있거든요. 어려움 겪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매달 한 번씩 인사동이나 월미도에서 공연을 해요. 겨울에는 추우니까 실내에서 하고요. 후원권을 판매해서 모금하는 형식이에요. 예전에는 노래를 했는데, 잘 못한다고 이제는 안 시켜주네요. 지금은 스피커같은 물품을 나르고 설치하는 스탭으로 힘을 보태고 있어요.

질)언제부터 그런 일에 관심을 둔 건가요?

답)제가 전교조 세대에요. 사회문제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관심도 컸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회 일을 했어요. 대학교 때도 총학생회 회장이었고요. 문학 동아리도 했는데, 글쓰기 보다는 정치적인 활동을 더 했어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질)집에서 반대도 적지 않았을 텐데요.

답)아버지가 속을 많이 썩으셨어요. 공부는 안하고 계속 딴 짓만 하고 다니니까요. 형들은 이런 말도 했어요. “만약 아버지 돌아가시면 너 때문에 그렇게 되시는 거다“라고요. 처음엔 시도 못 쓰게 하셨어요. 전공이 국문과인데, 대학 갈 때도 반대가 심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 줄 거라 늘 믿고 살아요. 또 시적자양분이 가족에게서 왔으니까 늘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첫 시집 서문에 ‘가족으로부터 나온 이것들을 다시 그들에게 돌려보낸다’라고 쓴 겁니다.

질)문학에 대한 욕심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답)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요. 특출한 재능은 없었지만 시인이 돼야지 하는 생각은 어릴 적부터 있었어요. 꿈이었거든요. 국문과를 간 것도 그 이유고요. 본격적으로 시를 쓴 건 졸업한 이후에요. 졸업하던 해, 그러니까 2000년에 등단했어요. 작가세계 신인상으로요.

질)4년이나 지나서 첫 시집이 나온 셈이네요.

답)시를 힘들게 써요. 오래 삭히거든요. 무언가를 보고 메모를 해두었다가 그냥 묵혀둬요. 이제 이야기 해야겠다 싶을 때까지요. 하나의 면과 수많은 관계를 파악해야 하나의 상이 그려지거든요. 특히 어떤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말할 때 신파처럼 그리거나, 소재거리고 쓰고 싶지 않아요. 그러다보니깐 하나 쓰는데 2~3달 걸리기도 해요. 그래서 문예지 청탁을 받고 약속을 못 지키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꾸중도 많이 듣고요. 죄송한 일이죠. 그러다보니 좀 늦게 나왔네요.

질)이번 시집에서 마지막 시 ‘말의 퇴적층’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나는 멸망한 시인을 증명할 것이다’라는 구절이요.

답)시를 놓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시를 찾는 독자는 많지 않아도 누군가는 읽고 있잖아요. 그게 중요해요. 직접 대중과 만나는 기회가 적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속에 녹아들어갈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카피라이터가 제 시를 읽고 광고 카피로 사용한 게 있어요. 그 경우는 광고의 질에도 기여를 하고, 시가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노출 된 거죠. 다른 소설가나 희곡 작가들이 읽으면 또 다른 형태로 세상에 나올 거고요. 그렇게 대중의 언어와 정신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니까 계속 써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질)시인의 역할은 뭘까요?

답)인간의 이성이 비워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가되, 이곳과 단절되지 않고, 이곳이 가진 총체성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가야 해요. 현실상황을 도외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별을 따려고 해도 발은 바닥에 붙여 둔 모양이랄까요. 하늘만 지향해서는 곤란해요. 그래서 필요한 경우에는 시인이 현실에 대한 발언을 꾸준히 해야 하지 싶어요. 작가단체들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고요. 사실 꼭 시인이라서 그런다기보다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그때 그때 저항하고 싸우는 거죠.

질)서정시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답)처음에 시집을 냈을 때는 미래파가 등장하기 이전이었어요. 새로운 미학이라는 칭찬도 받았고, 노동시를 쓰던 분들에겐 욕도 들었어요. 그러다가 미래파가 등장하면서 어느 틈엔가 정통 서정시로 편입됐어요. 그런데 그렇게 규정화되긴 싫어요. 고정화된 이미지도 원치않고, 다양하게 열어두고 싶어요. 굳이 현재 자리를 찾자면 정통 서정시도 아니고 미래파도 아닌 아슬아슬한 줄타기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다른 종류의 글을 써볼 계획은 없나요.

답)예전에 희곡을 한 번 써봤어요. 예술위원회에서 근무를 할 때였죠. 연극 연출을 하시던 심재찬 사무처장님이 아르코 예술 극장에서 연극을 해보자하고 하셨어요. 희곡을 하나 써달라고 요청을 받은 거죠. 그래서 ‘나비 눈’이라는 노숙자 이야기를 그렸어요. 처음 서울 올라와서 희곡 쓰는 친구와 함께 살면서 얻어 본 걸 밑천으로 썼죠. 평가는 나쁘지 않았어요. 계속 써보자는 제의도 있었고요. 근데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어요. 물론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희곡으로 밖에 못하는 거라면 써야겠죠. 그런데 그렇지는 않으니까 억지로 쓰지는 않으려고요.

질)2006년에는 남북문학의 방에서, 북한 시인과 낭송을 했습니다. 어땠나요?

답)얼떨결에 낭독을 했어요. 그때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될 때 일을 도와줬어요.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사실 그때는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도 이제 북에서 사는 사람들도 우리 독자가 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느꼈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고요. 그전까지 북은 닫혀있고 논외의 곳이라는 인식이었어요. 그게 허물어지면서 제가 생각하는 세계의 가운데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올해 또 있을 예정이에요. 이번엔 북쪽 작가를 초청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참여해보고 싶어요.

질)쉴 때는 뭐하세요?

답)운동을 좋아해요. 특히 축구요. 문단에 축구특기생으로 들어왔다는 농담도 가끔 들어요. 요즘엔 뜸했어요. 작년 여름에 발을 다쳐서 한동안 쉬었거든요. 문인들끼리 만든 축구모임이 있는데, 공 차러 부르면 가서 뛰어요. 여행도 즐기는 편이에요. 왁자지껄 하면서 돌아다니는 건 별로고요. 어딜 가도 콕 처박혀 있어요.

질)앞으로의 계획이 듣고 싶습니다.

답)올해는 쉬고 싶어요. 직장생활을 오래했거든요. 그래서 여행을 가려고요. 지금까지 삶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70년 정도를 산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이 딱 절반이거든요. 의미 있는 시점이죠. 아직 구체적으로 일정을 짜진 않았어요.

질)어떤 시인으로 남고 싶으세요?

답)좋은 시를 쓰는 시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시를 많이 쓰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 번 하다 보면 노하우와 요령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대충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늘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사유해서 시를 쓸 겁니다.

시인은 “문장은 마음의 결이고, 글을 쓰는 건 나를 들키는 행위”라고 말했다. 적어도 그에게는 맞지 싶었다.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말투가 그의 시어처럼 고왔다.

생계형 글쓰기는 가능한 안하고 싶다는 시인의 말. 비단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터다. 갈수록 시의 입지가 좁아지는 요즘, 젊고 재능 있는 시인에겐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소수의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폭넓은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이탈을 막고, 토대가 무너지지 않는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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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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