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문맹자와 노동자가 사랑한 시인 '네루다'... 거리의 언어로 시의 감동 전해
[책속의 지식] 문맹자와 노동자가 사랑한 시인 '네루다'... 거리의 언어로 시의 감동 전해
  • 윤혜란 시민기자
  • 승인 2016.04.14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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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창작시론> 오정국 엮음 | 문학의전당

[화이트페이퍼=윤혜란 시민기자] ‘시인은 죽어도, 시는 죽지 않는다.’

칠레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말이다. 그가 남긴 시는 여전히 살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시인이자 정치인이기도 했던 네루다. 그는 시를 ‘광장의 언어’로 규정했다. 모름지기 시는 거리나 시장에서 주워온 말로 쓴 것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어디서든 낭송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현대시를 대표하는 14명의 시론을 하나로 엮은 <현대시 창작시론>(문학의전당, 2016)에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론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 시가 날 찾아온 것은.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중략) 
하지만 어느 거리에서인가 날 부르고 있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라는 시의 일부다. 그는 시가 어디서 자신을 찾아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네루다는 자신을 시론을 저술로 남기적은 없지만, 그의 시관(詩觀)은 뚜렷하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책에서 시를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 내전을 겪고 난 후 네루다는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중략)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239쪽, 일부수정)

책에 따르면 네루다는 거리나 시장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시를 썼다. 그는 무지한 노동자라 할지라도 그 뜻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자 했다. 그는 문맹자나 농부들에게 종종 자신의 시를 읽어주었는데, 그들이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얘기하곤 했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에서 네루다는 자신이 받은 가장 큰 상은 바로 민중시인 된 것이라고 말한다.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도 상하고 두 눈조차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탄광의 갱도에서 나왔다가 네루다를 보았다. 광부는 네루다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을 건넸다.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네루다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자신이 받은 상이라고 말했다.

7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칠레 민중들에게 저항의 상징이 된 네루다. 사실 ‘파블로 네루다’는 그의 필명이다. 체코의 시인 얀 네루다의 시에 매료되어 16세부터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시 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 때문이기도 했는데, 42세에는 아예 필명을 호적의 이름으로 바꿔버렸다.

네루다는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 또한 죽은 시인이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그는 ‘리어리스트를 뛰어넘는 시인’이고자 했다. 그는 시인이자 정치인으로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당대의 현실과 부단히 싸웠다. 때문에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네루다의 시는 언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생동이다'.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때마침, 20대 총선이 끝이 났다. 변화하는 민심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는 누가 국회의원이 되었든 정치가 단순히 말 뿐이 아닌 나라와 국민을 진짜 살리는 일이 되기를 바래본다. 또한 네루다처럼 소외된 이들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더불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과감히 '아니다'라고 말하며 당당히 맞서는 소신 있는 정치를 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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