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문장이 진실이 되는 건, 읽는 이의 삶과 만났을 때 뿐이다.”
[신간] “문장이 진실이 되는 건, 읽는 이의 삶과 만났을 때 뿐이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6.04.14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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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문장> 한귀은 지음 | 홍익출판사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텍스트의 문장이 진실이 되는 때는 그것이 읽는 이의 삶과 만났을 때 뿐이다.”

<여자의 문장>(홍익출판사.2016) 프롤로그의 한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책에 밑줄을 긋는 이유는 자신의 삶과 접점이 있어서다. 저자는 죽은 활자였던 문장이 삶과 만나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책에 담았다. 니체, 괴테, 융 고전부터 러셀 등 인문학자의 책, 무라카미나 박경리 소설, 영화 ‘인턴’ ‘경주’, 백석의 시와 노래 가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하지만 책을 보는 관전 포인트는 비단 저자가 제시하는 명문장에만 있지 않다. 명문장과 삶을 엮어내는 저자의 말솜씨, 재미있는 사례와 이에 대한 사유야말로 별미다. 이를테면 타인과의 성숙한 관계에 대한 장이 그렇다.

저자가 아는 한 여자 이야기다. 그 여자는 남자로부터 비싼 가방을 선물 받고 자신은 남자의 생일에 치실로 그의 이를 청소해주는 것으로 답례를 했다. 과연 그 남자는 어떤 기분이고 여자는 무슨 생각에서 그랬을까.

구강청소가 답례라니, 충격적인 내용에 저자는 심리학적 해석을 내놨다. 여자는 일종의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히스테리성 성격장애다. 둘 다 타인과 관계 맺는 데 어려움이 있다. 소위 공주병이다. 여자에 대한 분석적 시선은 이렇다.

여자는 자신만만해 보였지만 늘 노심초사했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을 땐 늘 그 여자들을 경계하고 남자들 앞에서 여왕벌 행세를 하려 했다. 이런 여자들의 특징은 주위 사람들을 몸종이나 무수리로 둔갑시킨다는 점이다. 단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사실조차 왜곡 시켰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크게 공감이 될 터다. 공주병을 앓고 있는 여자에게 울림을 줄 문장은 ‘모름지기 선물은 아름다운 뇌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다.

“받거나 교환된 물건이 사람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 그것은 받은 물건이 생명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증여자가 내버린 경우에도 그 물건은 여전히 그에게 속한다. 그는 그것을 통해서, 마치 그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을 때 그것을 훔친 자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수익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51쪽)

공주병에 걸린 한 여자 이야기와 텍스트를 잇대어 풀이한 감각이 탁월하다. 선물이란 결국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간절한 기호이자 선물을 주고받음으로써 도덕적 책무가 생기는 매개체다. 따라서 선물로 서로의 관계가 더 공고해진다는 저자의 담백한 결론이 돋보인다. 유쾌한 에세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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