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 북데일리
  • 승인 2008.02.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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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역할은 크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들이 모여도 지휘자가 별 볼일 없으면 음악도 빛을 발하기 어렵다.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며 연습을 이끌고, 공연 당일까지 각 파트를 조율해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서다.

그런데 이런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바로 ‘뉴욕의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다. 그들은 1972년 이래로 지휘자 없이 리허설과 연주를 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걸까.

의외로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리허설을 하는 동안 한 연주자가 일어난다. 나머지 인원은 연주를 계속한다. 자리를 뜬 연주자는 관객석으로 이동한다. 그러고는 일정 시간 연주를 경청한다. 이후 오케스트라 앞으로 걸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때 모두 연주를 멈추고 의견을 듣는다. 일어섰던 연주자는 철저히 관객의 입장에서 자신의 느낌을 말한다. 이때 잘못을 지적해도 반발하는 사람은 없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면 수석악사의 신호 아래 문제가 됐던 악절을 다시 연주한다. 이런 식으로 연습을 반복해 한 곡을 완성한다.

이런 특이한 방식의 운영은 오케스트라의 탄생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권위주의적인 인물과 계급에 불만을 품은 컬럼비아대학교 학생들이 일종의 음악 공동체를 만들면서 시작한 게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였던 것.

때문에 선곡이나 채용과 같은 결정을 모든 단원이 함께 내린다. 리허설을 할 때도 모든 연주자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멤버 중 한 명인 에릭 바틀릿은 “우리는 자기 생각을 얘기할 때 주저하지 않는다. 누구나 앞으로 나가서 자기 생각을 얘기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이런 독특한 형태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다. TV와 영화 음악을 취입한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나, 줄리아드 같은 명문 음악학교에서 지도하는 연주자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독특함만 찾는 뜨내기들이 모인 오케스트라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지휘자가 있으면 쉽게 처리할 사항을 단원들끼리 논의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결국 재정의 압박을 가져왔고, 지금은 수석악사가 각 악장을 이끈다. 그래도 여전히 지휘를 하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은 없다. 시간 역시 많이 단축됐지만 보통 오케스트라보다 콘서트 준비 시간이 3배 정도 더 걸린다.

워싱턴대 심리학 교수이자 경영컨설턴트인 키스 소여는 이런 비합리적인 오케스트라의 운영에 주목한다. 저서 <그룹 지니어스>(북섬. 2008)에서 그는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는 어떤 지휘자도 이끌어내지 못한 특별한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냈다”며 경영 분야에서도 “업무를 비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가운데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혁신이 일어난다”고 전한다.

또한 이를 그룹 지니어스의 한 가지 사례로 보며 “경쟁 지향적이고 빠르게 변하는 첨단기술로 무장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미래의 조직은 그룹 지니어스를 통해 움직일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룹 지니어스란 집단적 노력과 협력을 통해 즉흥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책은 협력과 창조를 키워드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조직의 혁신 방법을 소개한다. 갈수록 고급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는 한국 사회를 생각했을 때 “한 명의 천재가 세상을 이끄는 시대는 끝났다”는 저자의 외침이 눈길을 끈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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