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유대인학살 알린 시집, 바다 건너 ‘유리병편지’로 발견... 시인 파울 첼란 '시는 유리병 편지와 같아'
[책속의 지식] 유대인학살 알린 시집, 바다 건너 ‘유리병편지’로 발견... 시인 파울 첼란 '시는 유리병 편지와 같아'
  • 윤혜란 시민기자
  • 승인 2016.04.08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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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창작시론> 오정국 엮음 | 문학의전당

[화이트페이퍼=윤혜란 시민기자] 망망대해에 띄워 보내는 ‘유리병 편지’. 절망과 간절함이 한데 뒤엉킨 그 유리병 속에서  1942년 유대인의 참상을 알린 시집 한 권이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고난이 닥칠수록 더 강해지는 민족이 있다. 바로 유대인이다. 그들은 고난이 남긴 교훈을 뼛속까지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유대인의 역사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2000여년 전부터 시작된 고난의 역사는 성경에 기록했고, 탈무드를 만들었으며, 열 세살에 불과했던 소녀 ‘안네’ 또한 일기를 통해 세계 제 2차대전의 참상을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유대 시인 이작 카체넬존도 그러했다. 유대인의 참상을 담은 호소력 깊은 시는 '유리병 편지'로 발견돼 영혼을 울렸다.

때는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진행 중이던 1942년. 계속된 나치의 학살과 학대를 참지 못한 유대인들이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강제 격리 거주지)에서 봉기를 일으킨다. 하지만 나치의 진압에 유대인들은 결국 전멸의 위기에 처한다. 이들은 마지막 힘을 모아 딱 한사람을 피신시키기로 한다. 그 한사람은 여성도, 어린이도 아닌 시인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줄 시인 말이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유대인들의 마지막 희망이 되기로한 시인 ‘이작 카체넬존’. 그는 자신들이 겪은 일을 시어로 담았고, 깨알같이 베껴 여섯 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카체넬존도 붙잡혀 유대인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로 송환된다. 그는 몰래 시들을 유리병에 담아 수용소 마당 아래 파묻어 놓는다. 얼마 후 카체넬존 또한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끌려가 끝내 죽음에 이른다.

그런데 그가 남긴 시들은 이후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시는 수용소 나무 아래에서 발견되기도 했고, 아우슈비츠를 간신히 빠져나온 한 유태인 소녀의 가방 손잡이에 넣어져 전해지기도 했으며, 그 중 한 권은 망망대해를 건너온 유리병 편지로 발견되었다.

유대계 독일 시인 파울 첼란은 ‘시란 유리병 편지와 같다‘고 말했다. 마치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밀려온 ‘유리병 편지’ 말이다.

현대시를 대표하는 14명의 시론을 한 데 묶은 <현대시 창작시론>(문학의전당, 2016)에는 파울 첼란의 시론이 담겨있다.

‘시는 언어의 한 형태로 그 본질상 대화적 성격을 띱니다. 때문에 일종의 ‘유리병 편지(Flashchenpost)'와 같습니다. 비록 그 희망이 늘 크지는 않지만, 믿음이지요. 언젠가, 그 어딘가에, 어쩌면 마음의 땅에 가 닿으리라는 희망을 품기에 유리병에 담아 띄우는 편지와 같은 거죠. 한 편의 시들도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마주해 있습니다. 무얼 마주해 있느냐고요? (중략) 어쩌면 말을 건넬 수 있는 ‘당신’ 또는 현실 하나를 향해서요.‘ (201쪽, 일부수정)

유대인이었던 첼란 또한 유대인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그의 부모는 그곳에서 죽었고, 그 또한 가스실 처형 직전 극적으로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다.

유리병에 담아 망망대해에 띄워 보내는 편지. 어쩌면 글이란 게 본래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는 바라며 띄우는 ‘유리병 편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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