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공포증’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 있는지. 취업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구직자들에게 최대 복병으로 등장한 새로운 증상이다. 면접 상황에서 경험하는 심한 긴장과 불안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면접공포증은 수줍음, 부끄러움의 수준을 넘어 의학적으로는 ‘사회공포증’이라고 진단한다.
‘면접 공포증’ 뿐 아니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유발되는 각종 현대병은 자가진단을 통해서도 해결될 수 있다. 얼마 전 ‘웃음요가`라는 재미있는 건강운동법을 개발한 한 중학교 체육교사가 "웃음 바이러스는 감기보다도 전염속도가 빠르고 건강에도 좋다"라고 한 말처럼 웃음이 주는 치료능력을 기대해 볼 만하다.
스트레스로 짜증날 때나 우울할 때 크게 웃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소설 <공중그네> (은행나무. 2005)의 정신과 의사 이라부 이치로 박사를 만나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소설은 엽기 의사 `이라부`와 육체파 간호사 `마유미`가 버티고 있는 정신과 병원에 기상천외한 강박증 환자들이 찾아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라부 종합병원. 어두침침한 지하 신경과에 뚱뚱한 중년 의사 이라부 이치로 박사가 기다린다.
주사 맞는 걸 싫어하는 야쿠자 보스에게 주사를 놓기 위해 힘 좋은 외국인을 일일 고용하고, 공중그네타기를 번번히 실패하는 서커스 단원 환자를 따라 그네타기에 도전하는 괴짜 의사다. 아무리 말려도 들은 척도 안하고 주위사람의 의견이나 시선 따위는 관심 밖이다. 그저 자신이 좋으면 좋은 대로 해버리는 다섯 살 수준의 상황 대처능력.
의사로서 전혀 신뢰감이 들지 않는다 화를 내면서도 한번 발을 들여놓은 환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그를 찾아와 치료를 받는다.
“야쿠자 일이라는 게, 말하자면 고슴도치 같은 거잖아. 항상 상대를 위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그런 일은 누구든 지치게 마련이니, 그 반대급부로 끝이 뾰족하거나 예리한 물건을 받아 들일 수 없게 됐는지도...” (본문 중)
“외국에서 귀국한 애들이 자주 전학을 오긴 했는데”
“게다가 소규모일 때는 괜찮은데, 규모가 커지면 갑자기 긴장하는 것 같고...”
“외국물이 들어서 시건방졌거든”
“그런 증상에도 무슨 병명이 있는 건가요?”
“모두들 왕따를 시켰지. 도시락으로 싸 온 샌드위치에 연고를 발라놓기도 하고”
“선생님,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도 좀 들으세요”자기도 모르게 찬바람이 쌩쌩도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본문 중)
선문답 같은 그와의 대화 속에서 환자들은 지나치고 묻어 두었던 깊은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야쿠자가 적성에 맞지 않는거 였고, 공중그네 실패 원인은 허리가 굽은 탓인줄 알았지만 새로운 파트너에 대해 굳게 마음을 걸어 잠그고 있던 자신의 폐쇄성이 문제였다.
“장기체류? 에이, 그럼 통원치료 받을 수 있는거네. 괜히 큰 주사 놔서 손해만 봤다”
“괜찮아, 괜찮아. 첫 진료는 서비스로 해주니까 돈 걱정은 안해도 돼. 푸하하하” (본문 중)
진료실에 들어가자 마자 하나같이 환자는 ‘현실감’을 상실한다. 주사 한방 놔주고는 구석 벤치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잡지를 뒤적이는 간호사는 세상에서 제일 한심하고도 황당한 의사와 명콤비를 이뤄 환자를 맞이한다.
<공중그네>로 일본 내 권위있는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오쿠다 히데요(46. 사진)는 최근 일본에서 떠오르는 ‘이야기꾼’으로 불린다. 2002년 펴낸 <인 더 풀>로 주목을 받은 작가는 2년 뒤 후속작인 <공중그네>를 펴냈다. <인 더 풀>은 동명영화로 개봉돼 인기를 끌었다.
소설은 산만한 덩치, 미련해보이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 박사의 천진한 내면이 온갖 스트레스로 심리 장애를 일으키는 다섯 환자를 만나며 일으키는 즐거운 화학작용을 술술 풀어내고 있다.
속속 이어지는 기발하고도 엉뚱한 장면들은 술렁술렁 간단히 넘어가지 않는다. 탄탄한 짜임새,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예사롭지 않다. 이라부 박사로 연결되는 이야기 구조 긴밀성은 핫팬츠 차림의 간호사와 이라부 선생을 대하는 환자들의 첫인상을 동일하게 표현해 반복적으로 어필함으로써 캐릭터가 가진 힘을 묘하게 돋보이도록 한다.
(사진 = 소설 <공중그네>의 전편인 <인 더 풀>의 동명영화 스틸 컷) [북데일리 송보경 기자]ccio@p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