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김재범 기자] 이제는 세상과 마주하는 인간이 됐다. 인간이 됐다는 말이 참 웃기다. 그도 웃었다. 자신은 언제나 인간이었다고. 그래서 그 웃음이 참 달게 느껴졌다. 세상과 어쩔 수 없는 벽을 쌓고 살아온 시간이 그에겐 자연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벽을 쌓은 당사자가 본인이 아니란 점이다. 세상이 그의 주변에 두터운 장막을 쌓아 올렸다. 언론이 그를 그 장막 뒤편으로 몰아 세웠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뒤에서 자신을 감추며 살아왔다. 온전히 자신의 있는 그대로만 봐주길 원했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사실에 어느 순간 집중했다.
수많은 루머를 만들어 냈다. 팩트는 한 가지였지만 그 밑에 달린 셀 수도 없이 많은 잔뿌리가 그를 다르게 만들어 갔다. 그는 배우란 직업을 버리고 세상의 시선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벽이 허물어질 때쯤 나타났다. 신비로운 그녀의 이미지도 어느 정도는 벗겨졌다. 물론 그는 단 한 번도 세상에서 도망친 적이 없다. 세상이 그의 도망을 만들어 냈었을 뿐이다. 영화 ‘무수단’으로 데뷔 첫 스크린에 나선 배우 이지아에 대한 얘기다.
개봉 전 만난 이지아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오랜만에 언론과 만남이라 긴장했을 것이란 예측을 해봤다. 이미 언급한 ‘그 파장’ 이후 실질적인 언론과의 밀착 대면이기도 했다. 워낙 알려진 바가 없었기에 ‘외계인설’ ‘뱀파이어설’에 휩싸이며 갖가지 루머를 만들어 온 주인공 아닌가. ‘무수단’을 통해 여자 군인으로 돌아온 이지아의 모습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고요함마저 느껴졌다.
“저 별로 안 신비하죠?(웃음) 그냥 평범한 여자에요. 하하하. 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이랄까. 그런 것에 좀 괴롭힘을 당했던 것 같아요. 저 스스로가. 사실 그럴 기회도 거의 없었잖아요. 뭐 지금은 아주 편해요. 행복해요. 뭐 이런 말도 ‘믿어주실까’란 생각을 하지만 전 실제로 그래요. 이번 영화도 너무 즐거웠고요. 정말요(웃음). 물론 고생은 정말 말도 못할 정도였죠. 하하하.”
연예계의 대표 ‘신비주의’자였던 자신의 과거 이젠 농담으로 즐길 만큼 편안해졌다. 그는 실질적인 컴백작인 ‘무수단’의 얘기에는 활기를 띄었다. 데뷔 후 첫 스크린 작품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싼 신비한 아우라와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은 ‘여자 군인’ 역할이다. 군대 얘기를 첫 스크린 작품으로 택한 이유도 이지아이기에 궁금했다.
“왜 의외라는 말씀들을 하시는지 전 그게 더 궁금해요. 작품이고 배역인데. 배우인 제가 하는건 당연하잖아요(웃음). 신유화 중위란 인물, 사실 누가 봐도 한 번 쯤은 해보고 싶은 욕구를 느낄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다가왔고. 더군다나 여자에게 군대는 미지의 영역이잖아요. 물론 여군들이 많이 계시지만. 전 궁금했어요.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날까.”
그 호기심은 결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너무도 호된 고생에 다시 ‘군대’ 얘기를 할 자신이 없을 것 같다는 엄살도 피울 정도다. ‘무수단’이 주로 촬영지로 택한 산속에서의 작업은 상상을 초월했단다. 벌레들의 습격은 애교 수준이었다고. 영화 개봉 전 공개된 ‘실신’은 이지아의 고생담을 전하는 단편의 시작일 뿐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고생스러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일단 군복이 너무 불편해요. 세상에서 가장 비실용적인 옷이 군복이란 걸 깨닫게 됐죠(웃음). 남자 분들 말로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옷’이 군복이라고 하더라구요. 딱 그랬어요. 그리고 엄청났던 ‘군대 모기’의 위력을 경험했죠. 하하하. 옷을 입고 있는데 그걸 뚫고 피를 빨아 먹더라구요. 흐르는 땀과 피 분장은 얼마나 찝찝한지 어휴(웃음). 나중에는 제가 탈진해서 실신했는데. 술 먹고 필름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하하하.”
고된 군 생활을 작품으로 대신 경험했으니 한 번 권유 해 볼만했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 중인 군대 체험 예능이다. 그 말에 이지아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이 영화 찍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어왔던 질문 가운데 하나였다고. 사실 한 번 가볼 만도 하지만 엄두가 나질 않는다며 부끄러운 웃음을 지었다. 한 번이면 족하지 두 번을 꼭 해야겠냐며 웃었다.
“이번 촬영 끝나고 ‘진짜 사나이’를 집에서 보니 정말 남일 같지가 않았죠. 군인 역할 한 번 해보고 나니 더 무서워지는 거 있죠(웃음). 갈 수 있을까요? 제가? 글쎄요. 전 아마도 촬영 반 나절도 안되서 기절할 거 같아요. 하하하. 군대 다녀오신 분들의 조언을 들어보면 그 경험이 간접적으로 체험이 되잖아요. 물론 정말 열심히 했고, 여성 장교로서 허술하지 않게 보이려 노력 많이 했죠. 군대요? 이번 촬영으로 만족할래요. 하하하.”
가까이서 바라본 이지아는 너무도 여리고 여성스러운 면이 강했다. 하지만 그는 데뷔작 ‘태왕사신기’부터 ‘아테나 전쟁의 여신’ 그리고 ‘무수단’ 등 강렬한 임팩트가 자리한 액션 장르와 유독 인연을 많이 맺어 왔다. ‘무수단’을 찍을 때도 액션 장면만 나오면 눈이 번쩍 띌 정도로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멜로 감성보다는 아직 액션에 대한 강렬함이 더 욕구 충족을 갈망시키는 것 같단다.
“극중 제가 연기한 신유화 중위는 실제 저와 너무 달라요. 외모만 이지아가 연기했기에 비슷하지. 너무 틀려요. 그게 오히려 절 끌어 당겼나봐요. 치밀한 신유화 중위와 달리 실제 이지아는 덜렁대고 매번 뭘 빠트리는 엉뚱하고 허술한 여자에요. 사실 절 완벽한 여자로 보셨던 분들도 정말 많아요. 아주 치밀할 것 같다고. 제가요? 그랬죠. 하하하. 저 그런 것과는 정말 먼 여자에요(웃음)”
올해 가장 최고의 목표는 ‘다작’이란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배우로서 자신의 소비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고, 때로는 촉진을 원하는 케이스도 있다. 이지아는 전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좀 더 많은 소비가 되기를 희망한단다. 자신을 보여 줄 기회가 선택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단다. 그저 소망은 그것 뿐이란다.
“너무 뭘 가렸잖아요. 지금까지. 물론 제 의지가 담겨 있던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래서일까요. 올해는 무조건 많이 하고 싶어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많이 나오고 싶어요. 욕을 먹어도 전 배우로 욕을 먹고 싶어요. 연기를 못한다는 욕도 좋아요. 배우로서 먹는 욕이잖아요. 올해는 많이 뵙고 싶어요. 배우 이지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