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박노자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의 나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고 귀화한 그였지만 바로 춘향전이 만들어낸 전통의 허구성을 거침없이 파헤쳐 왔다.
그의 균형적이고 현실주의적인 분석은 위험하면서도 통쾌하다. 이제까지 아무런 의심도 하자 않았던 사실들을 전복한다. 이것이 그의 장점이며 우리에게 올바른 역사관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 역사의 잘잘못에 대해 마치 암행어사처럼 옹골차게 마패를 들이대었다.
이번에 나온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한겨레출판. 2007)도 미해결의 문제에 대해 당혹스러운 질문을 한다. 더구나 제목에 나와 있듯 지역을 동아시아로 확대하면서 공진화(供進化)논리로 다각적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여기서 동아시아는 한 중일 이라는 지역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상적으로는 진정한 지역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근대 망령으로부터 탈출`을 말한다. 근대는 한 중일 동아시아의 질서가 격동하는 시대였다. 이러한 세력 균형에서 일본이 강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즉, 국익(國益)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자본적인 계산이 아무런 독자적인 전략 없이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해방 뒤 경무부장으로서 친일 경찰 출신의 부하를 옹호했던 조병옥은 "일제시대 먹고 살기 위해 친일을 한 프로잡(pro-job)은 처벌하기 곤란하다. 다만 그 이상의 친일을 한 프로잽(pro-Japanese)이 문제다."라고 했다.
또 톨스토이에 대한 커다란 문제점은 `개인 수양의 이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병역거부야 말로 모든 지배의 폭력적인 성격을 노골화하는 피지배자의 첩경."이라는 말은 부각되지 않은 체 오로지 교양인이라는 이미지로 우상화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양상은 역사적인 당위성을 포기하게 하고 대신에 먹고 사는 것과 모범적인이어야 하는 문제를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근대의 망령들이 야누스처럼 때로는 메두사처럼 우리의 불행한 역사를 간섭하고 파괴하고 있다.
일찍이 에릭 홉스봄외 공동으로 집필한 <만들어진 전통>에 보면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인 퀼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스코틀랜드인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 이 의상은 실상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통합되면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입힌 작업복이었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전통이 역사와 단절된 것이 가장 큰 병폐이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전통을 지배를 경험했던 우리들에게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박노자는 만들어진 전통에 대해 반란하고자 한다. 그것도 아주 멋진 반란이다. 이는 민족갈등의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발전적인 화해이다.
[임재청 시민기자 ineverlan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