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플라나리아가 되고파
다시 태어난다면 플라나리아가 되고파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6.02.26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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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나리아> 야마모토 후미오 음 | 양윤옥 옮김 | 예문사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다음 생에는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어.” (11쪽) 일본의 나오키상 수상자 야마모토 후미오의 대표작 <플라나리아>(예문사. 2016)의 여주인공 ‘하루카’가 하는 말이다.

“깨끗한 돌 밑에서 살고 그리 귀여운 편도 아니라서 주목받을 일도 없고, 그러니 아무 생각도 않고 살 수 있잖아요. 게다가 잘라 내도 재생이 가능하다니 죽을 걱정도 없다는 얘기겠죠? 섹스 같은 거 하지 않아도 그냥 내버려 두면 쑥쑥 자라 두 마리로 나뉘는 것도 심플해서 좋아요.” (59쪽)

표제작 〈플라나리아〉에 등장하는 하루카는 스물여섯 살의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젊은 나이지만 이제 재취업이나 연애 모두 귀찮다. 자신의 병과 아직 복원 수술을 하지 못한 자신의 가슴에 대해 남들에게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한다. 당당하게 자신은 사회 부적응자고 비뚤어졌음을 드러낸다.

그녀는 지루하게 계속되는 항암 치료와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하다. 빨리 재취업을 하라고 부담을 주는 주위사람들이 싫다. 사람들 앞에서 선언한다. 자신은 차라리 ‘플라나리아’가 되고 싶다고. 재생 능력이 뛰어난 플라나리아는 몸뚱이를 잘라도 자른 토막들이 모두 각기 재생해 살 수 있는 동물이다.

하루카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채 타성에 휘둘리며 살아가기 보다, 차라리 플라나리아로 태어나 아무 생각도 없이 사는 편이 낫겠다는 것. 무기력함에 빠진 하루카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이런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읽는 내내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게 된다.

<플라나리아>(예문사. 2016)는 15년 만에 재 번역된 책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전혀 세대차를 느낄 수 없다. 현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가볍지 않은 소재들이지만 밝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술술 읽힌다.

이 밖에 <네이키드>는 이혼과 실직 후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만화책만 읽어 대는 삼십 대의 이즈미이 야기다. <어딘가가 아닌 여기>는 구조 조정 당한 남편 때문에 동네 할인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엄마가 주인공이다. 부유한 부모님을 답답하게 여기면서도 자립하지 못하는 대학원생 커플이야기 <죄인의 딜레마>까지 어찌 보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작가는 사회 부적응자들과 낙오자들의 다양한 ‘무직(無職)’ 양상을 그렸다. 그를 통해 꿈을 이루고 성공을 하는 것이 큰 가치인 현 시대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묻고 있다. 주인공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어서 충분히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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