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한국 근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 두 분은 속세의 나이와 승려로서의 나이 모두 20년 차이가 난다. 법정은 성철을 불가의 큰 어른으로 따랐다. 성철은 제자와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하면서도 유독 법정을 인정하고 아꼈다.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는 <설전>(책읽는섬. 2016)은 두 큰 스님이 나눈 대화와 둘 사이의 일화를 엮은 책이다. 제목 ‘설전’은 말다툼을 뜻하는 ‘舌戰’이 아니라 ‘雪戰’으로 표시한다. 책 뒷날개에 그에 대한 설명 글이 있다.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눈의 성질로 수행자의 냉철하고도 온화한 자세를 형상화 했다. 또한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사이의 구도의 문답을 표현하고자 했다.” (일부 수정)
책에는 ‘성철 불교’의 본질을 끌어내는 법정의 질문과 거기에 답하는 성철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성철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원택의 증언이 더해졌다.
법정이 해인사 강원에 머물던 1967년, 성철은 해인사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된다. 성철은 그 해 12월 4일부터 100일 동안 설법에 들어간다. 이것을 ‘백일법문(百日法門)’이라고 한다. 수많은 승려와 불자가 그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 든다.
이때 법정은 아주 원론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무엇을 불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정말 사람이 성불할 수 있습니까?” 같은 불교의 초심자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가야산의 호랑이’라는 별명이 있던 성철은 법정의 질문에 일일이 답한다. 결국 이러한 질문은 성철의 설법이 대중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 ‘불교佛敎’에서 ‘불佛’은 부처님이고 ‘교敎’는 가르침이니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불佛’은 인도말로 붓다Budda이고 ‘깨친 사람’이라는 뜻이니, 이 세상 모든 이치를 일체만법一切萬法의 근본 자체를 원만하게 깨친 사람의 가르침이라는 것이겠지요.
불교는 일체만법을 깨친다는 것에 근본 의의가 있으니 ‘깨친다’는 데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서 불교를 논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교가 아닙니다.” (27쪽)
책은 1982년 벽두에 한 언론사의 주선으로 만난 성철과 법정의 대담도 실었다. 두 스님은 자아를 닦는 일상의 수행법과 불교의 근본적인 정신, 지도자의 덕목, 물질만능 시대의 인간성 회복 문제, 권력과 이념에 편승하지 않는 언론, 미래가 꺾인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눈다.
“(출가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수행하는 기간 동안에는 세속을 버리고 사는 것 같지만, 근본 목적은 성불해서 중생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92쪽)
그들의 대화는 선승이 세상과 떨어져 홀로 수행만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없애준다. 그들도 타인과 세상을 위해 살아갔으며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한 시대의 정신을 상징했던 두 스님이 나눈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