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소설 `토니 타키타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1997년에 발표한 작품집 <렉싱턴의 유령>(열림원. 1997)에 실린 7편의 단편 중 다섯 번째 작품이다. 영화와 동명 소설이라는 포스터 문구에 `하루키의 토니 타키타니` 로 책을 구하려다 보면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이처럼 <렉싱턴의 유령>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렉싱턴의 유령>에 실린 ‘렉싱턴의 유령’, ‘녹색 짐승’, ‘침묵’, ‘얼음 사나이’, ‘토니 타키타니’, ‘일곱 번째 남자’,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7편의 단편 집필 시기는 모두 다르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를 제외하고 ‘일곱번째 남자’와 ‘렉싱턴의 유령’은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이후(1966년), 그 외의 작품은 1990년과 1991년에 집필됐다.
이치카와 준 감독은 하루키가 발표한 많은 단편 중 `토니 타키타니`를 선택하며 “막상 영상으로 옮기려 했을 때 하루키의 원작이 인물들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것, 극단적으로 말하면 ‘얼굴’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소설을 읽으면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토니 타키타니`에 등장하는 주인공 토니 타키타니와 그의 아버지 쇼자부로, 사랑하는 아내 에이코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고독과 상실’을 안고 사는 인물들이다. 토니 타키타니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쇼자부로는 트럼펫 연주자라는 이유로 늘 집 바깥을 떠돈다.
소설은 ‘타키타니 쇼자부로는 역사에 대한 의지라든지 성찰 같은 것은 전혀 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었다.’ 라고 표현한다. 전쟁과 환난의 시대. 수상한 패거리들과 어울려 중국군에게 끌려갔던 쇼자부로는 1946년 봄 일본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그의 도쿄 집은 한해 전 3월 도쿄공습 때 불타버리고 사라진 상태다. 쇼자부로의 부모도 세상을 떠났다. 남은 유일한 혈육인 형 마저 버마전선에서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는 천의 고아가 된다. 청년시절 전쟁을 겪던 국가에 대한 우려와 걱정 없이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었던 쇼자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개인주의자다.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쇼자부로에게 가정이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쇼자부로가 아들의 이름을 ‘토니’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서 “타키타니 토니, 타키타니. 쇼자부로는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앞으로 당분간은 미국의 시대가 계속 될 것이고 아들에게 미국식 이름을 붙여두면 무슨 편리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 소설은 말한다.
영화가 “토니 타키타니의 진짜 이름은, 토니 타키타니였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쇼자부로는 지독한 개인주의자로서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조차 특별한 의미와 애정을 두지 않은 것 같지만 ‘토니 타키타니’라는 이름에는 그가이 겪은 시대의 고통과 아내와 부모를 잃었던 상실감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토니’라는 이름 덕에 변화된 시대에서 아들이 조금이라도 편히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쇼자부로.
이미, ‘아버지’라는 자격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한 그에게 ‘토니’라는 이름은 아들을 위한 최선의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아버지의 불운은 아들에게도 반복된다. 마치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옷맵시가 좋았던 여자 에이코와 토니의 결혼생활은 차사고로 아내가 세상을 떠나버리자 끝이 난다.
월급의 대부분을 옷 사는데 써버린다고 말한 에이코가 사고로 죽기 전까지 남긴 옷은 731벌. 그러나 토니 타키타니는 “새 옷만 있으면 그녀는 행복해보였다. 그래서 불평을 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이 세상에 완전한 인간이란 없는 법이니까..”(본문 중)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없는 가정이 더 이상 남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버지의 모습에서 목격한 토니 타키타니에게 아내는 삶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에 불평하지 않는다.
아내가 죽은 후 그는 아내와 같은 치수인 신장 165. 사이즈 2의 여자를 찾는 구인광고를 낸다. 그러나 실제로 아내와 닮은 여성이 나타나자 비슷한 신체와 체형을 가진 그 누구도 결코 아내를 대신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토니 타키타니는 자신을 찾아온 여자에게 일곱 벌의 옷과 구두를 주며 돌아가 달라고 부탁한다. 아내가 남긴 옷을 헐값에 치르고 아버지가 남긴 레코드를 버린 후,이제 진짜, 혼자가 되는 연습을 시작한다.
영화는 원작을 훼손하거나 과장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름다운 영상과 독특한 진행방식으로 하루키 문학 특유의 여운을 살렸다. 소설의 엔딩에 덧붙여진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사진 = 영화 `토키 타키타니` 스틸 컷)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