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기적 혹은 이타적?
인간, 이기적 혹은 이타적?
  • 북데일리
  • 승인 2007.11.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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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은 사회 체제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기적 본성의 강조는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회 체제의 찬양으로 이어지고 이타적 본성의 강조는 복지와 분배, 사회안전망을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전자는 인간을 소유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반면 후자는 인간을 연대하는 인간으로 본다. 인간을 보는 관점은 사회를 보는 관점과 여반장이라는 소리다. 인간이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라는 논쟁은 ‘성선설-성악설’ 논쟁처럼 답이 없다. 그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현실에서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현실 사회는 이 둘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으로 보는 인간들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에도 인간의 본성이 이타적임을 말해주는 사례가 발견되고 인간의 본성을 이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에도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임을 증명해주는 사례가 많다. 어느 한 쪽으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이 해묵은 논쟁은 주로 철학자들이 싸워 왔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전혀 새로운 필드에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바로 사회생물학과 신경생물학이다. 둘 다 생물학에서 파생된 신생 학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주장의 본좌에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가 있다. 그는 사회생물학의 태두이다. 그렇다면 반대 진영을 대표하는 학자는 누구인가? 바로 오늘 소개할 독일의 의사이자 심리학자 요하임 바우어다.

그의 철학은 책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에코리브르. 2007) 속에 등장한 다음의 일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메바의 먹이는 박테리아이다. 박테리아의 수가 줄어들면 아메바들은 단독 생활을 접고 서로 달라붙어 달팽이 모양의 집합체를 이룬다.

여기까지는 이해하기 쉽다. 먹이가 줄어들면 뭉쳐 공동 생존을 지향하는 것은 인간이나 단세포 생물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과정에서 20%의 아메바 세포가 자발적으로 죽는다고 한다. 살아남은 아메바들이 다른 생물에게 자신의 포자를 퍼뜨릴 수 있도록 그들은 2밀리미터의 줄기를 만들고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투쟁과 경쟁이 모든 생물체의 본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협력 메커니즘이 아메바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태계의 본질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원칙은 협력에 있지, 경쟁과 투쟁에 있지 않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그는 그릇된 경쟁 신화를 유포한 주범으로 다윈과 도킨스를 지목하고 있다. 다윈과 도킨스의 중간에 나치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던 우생학이 존재했다. 다윈은 진화의 과정 속에 일어난 부분적인 현상을 보고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잔혹한 것이 숙명인 것처럼 오도했다. 다윈의 추종자인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인간을 통제하여 만인이 만인의 늑대인 전쟁 기계로 만든다고 했다.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만 협력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겉으로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는 더 큰 장기 이익을 보고 단기 손해를 감수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우어는 사회생물학은 다윈의 주장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사회 형태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도킨스는 “복지국가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존재로서 사람들이 자기가 키울 수 있는 아이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도록 요구해 무절제한 유전자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있다”고 극우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다윈과 도킨스를 세트로 묶어 조지면서 그는 상호부조론을 주장한 크로프트킨의 이론에서 논의를 출발하고 있다.

그는 유전자와 자본주의의 연결고리를 논박하고 있다. 우선 그는 인간이 프로그램된 유전자에 의해 지배받는 생명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생명체를 움직이는 건 유전가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동기라고 주장한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는 사랑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애정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

성공적인 인간관계는 모든 사람이 노력해서 얻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목표이다. 공격성은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관계를 맺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실패로 드러날 경우 발생하기 쉽다고 한다.

결국 인간은 환경,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라는 주장이다. 신뢰가 가능하면 신뢰가 우선적으로 발휘되고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 신뢰가 신뢰를 낳고 불신과 거절이 공격적인 태도를 부추기는 법이다. 범죄인의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려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범죄인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유전자는 세포 내 공생을 통해 함께 진화해 왔고 단독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공조해 작동하는 네트워크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교육 역시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 작용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아이의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으려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경쟁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사회성을 기르는 교육이 낫다는 말이다. 구구절절 옳다. 아메바가 하는 일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못할 게 무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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