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정혜윤 PD의 `관능적인 독서기`
CBS 정혜윤 PD의 `관능적인 독서기`
  • 북데일리
  • 승인 2007.11.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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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아주 납작하고 넓은 다다미 침대. 발치에 책을 잔뜩 쌓을 수 있도록 프레임이 달렸다. 특별 제작한 이 침대 위에 누우면 이 세상 무엇보다 행복하다는 독서광이 있다. 단, 책과 함께.

CBS 정혜윤 PD다. 시사 프로그램 연출 기획이 전공이다. 그녀는 지난봄부터 한 온라인 서점의 웹진에 독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방대한 독서량에서 비롯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관능적으로 풀어내는 글솜씨도 수준급.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금세 콧대 높은 독서광들이 모여 들었다. 결국 기라성 같은 칼럼니스트들을 제치고 당당히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주옥같은 칼럼들은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썩 잘 어울리는 부제를 달고 한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책 제목은 <침대와 책>(웅진지식하우스. 2007).

최근 목동 인근 카페에서 만난 정 PD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보따리를 한아름 풀어냈다. 먼저 책이 출간된 소감을 묻자 얼굴이 살짝 상기되며 말했다.

“사적인 속마음이 너무 많이 담겨있어요. ‘이건 나잖아!’라고 느껴지는 구절들이 많아서 부끄럽죠. 이렇게 책으로 출간될 줄 알았다면 좀 더 가공하고 꾸미기도 했을 텐데... 마치 1년 전에 찍은 내 사진을 1,000명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책 서문 마지막 구절을 통해 그녀가 이 책을 출간하는 이유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다음 그다음을 궁금해 하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의 일상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나의 영혼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충만하다. ‘나와 같이 가자’고 이끄는 억센 손을 잡고 봄밤에 담을 넘는 기분이다.’

일이 많고 바빠 책을 보기 위해서는 항상 뛰어다녀야 한다는 그녀는 자투리 시간 틈틈이 책을 읽는다. 길을 걸으면서, 심지어 운전을 하다 잠시 걸린 신호 대기에서도 책을 읽는다. 거리의 경관보다는 책에 주목하다 보니 대단한 길치가 됐다. 덕분에 “내가 사는 도시가 지겹지 않다”는 장점도 있다며 밝게 웃는다. 이렇게 책을 들고 다니는 습관이 몸에 밴 정PD는 ‘혹시 다 볼까봐’, ‘혹시 재미없을까봐’를 염려해서 항상 두 권 이상의 책을 들고 다닌다. 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 PD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시기는 한글을 깨우친 8살 무렵부터. 어릴 적 집 2층 계단에 한 켠에 방치됐던 고무보트를 타고 놀면서 그 안에서 항상 책을 읽었다고 한다. 또한 벽에는 먼 바다에서 배가 들어오는 그림 하나가 걸려있었는데 그녀는 ‘스페인 범선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타고 있는 고무보트가 물결에 출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점점 그림 속 큰 배에 탄 사람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은 뭘 봤을까?’라는 물음이 세계사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결국 외국 소설들을 탐독하게 됐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던 고무보트 안은 그녀만의 아지트이며 침대에 누워 책 읽는 것을 즐기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그녀의 어릴 적 꿈 또한 독특하다. 바로 <천일야화>의 주인공 세헤라자데 왕비가 되고 싶었던 것.

“목숨을 건 이야기가 천일동안 지속된다는 점이 너무도 매력적이었죠. 밤마다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그다음 그다음을 궁금하게 할 수 있는지... 이야기꾼이 되겠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호기심을 잃지 않게 하는 세헤라자데 왕비가 너무도 궁금하고 닮고 싶었죠.”

이처럼 정PD는 ‘이야기’에 주목한다. 책 속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은 항상 호기심을 자극했고, 이를 통해 점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또한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 자신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됐다고. 남에게 인색하지 않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편견이나 단죄하지 않을 수 있는 이해심이 생겼다며 “어느 정도 따뜻한 인간이 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보다 ‘성실한 독자가 되는 것’이 꿈이죠. 또한 가능하면 수잔 손탁과 같이 가급적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배우고 싶어요.”

독서광이자 시사프로그램의 PD 다운 꿈이 아닐 수 없다. "나와 같이 가자"며 손 잡아 끄는 정혜윤 PD의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가 어떠한 모습으로 지속될지 기대된다.

[구윤정 기자 kido99@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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