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격파하기, 다양한 논증
`가부장제` 격파하기, 다양한 논증
  • 북데일리
  • 승인 2007.11.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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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요즘 남학생과 여학생의 정치의식은 예전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공통점. 남학생, 여학생 모두 80년대 세대에서 느껴지는 패거리 의식, 집단주의 성향, 공동체에 대한 부채 의식은 훨씬 덜 한 편이다. 아니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차이점도 크다. 남학생들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고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편이다. 반면 여학생들은 민족주의보다는 세계화에 더 열려 있고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에 가깝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가장 대립각을 세우는 대상이 페미니즘과 가부장제다.

여학생들은 유교적 전통에 대해서 혐오감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 반면, 남학생들은 가부장제와 유교 전통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가도 여학생들의 성적이 좋고 여학생들이 국가 공무원 시험을 휩쓴다는 말이 나오면 그제 서야 발끈하면서 페미니즘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다.

남학생들에게 가부장제는 곧 기득권이다.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페미니즘에 대해 반박하고 싶지만 문제는 그럴 만한 논거가 딱히 없다는 사실. 여자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한 것이니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정도다. 그러면 고등학생들은 어떤가?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성적이 좋은데 군대 갈 걱정을 미리 하느라 남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지는 걸까?

남녀평등 시대, 심지어 여성상위시대라고 하지만 가부장제는 여전히 막강하다. 지금까지 많이 맞았지만 맷집이 좋아 끄떡없다. 무기를 바꾸자. 논증을 쓰자. 필자가 보기엔 가부장제를 논증으로 격파하는 데 이 책 이상이 없다.

저자는 호주제 철폐 운동을 펼쳐 온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여성이다. 이 책이 나올 때는 호주제 철폐를 놓고 우리 사회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시점이었지만 지금은 호주제가 퇴출되고 새 해부터 가족관계등록제가 시행된다. 그래서 시의성이 떨어진다. 시사 이슈를 다룬 책은 수명이 짧기 마련.

하지만 이 책 <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인물과사상사. 2004)는 지금 읽어도 참신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녀의 주장은 참으로 논증적이기 때문에 논술의 기본기인 논증력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의 논증 스타일은 스티븐 시걸 형이다.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공격이 아닌 방어로써 상대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킨다. 목소리 높여 자기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호주제와 호주제를 지지하는 남자들의 허망한 논리가 들어올 때 곧바로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식이다.

어느 정도 이 길래 필자는 허망하다는 표현을 썼을까? 남학생들만으로 이루어진 반에서 이 책으로 논술 수업을 했는데 호주제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남학생(그들 중 상당수는 마초에 가까운 기질이 있었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주장이 길래 호주제에 찬성하는 남학생들조차 폭소를 터뜨렸을까? 그리고 저자는 그에 대해 어떻게 반론을 펴고 있을까? 호주제를 옹호하는 남성 마초들의 주장과 논거에도 등급이 있다. 아래 단계부터 하나하나 살펴보자.

가장 저열한 수준, 비논리의 극치를 달린다. 주로 할아버지들이다.

① 우리 모두에겐 성과 본이라는 뿌리가 있다.

② 호주제 폐지는 김정일을 추종하는 공산화 혁명이다.

③ 호주제가 폐지되면 부모 자식도 남남이 된다.

④ 호주제가 폐지되면 근친상간이 일어나 사회가 무너진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론을 편다.

① 성과 본은 조상이 양반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조선 시대 양반은 소수였는데 그럼 당시 다수였던 상놈, 천민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전부 단종을 했단 말인가?

② 북한에 호주제가 없다는 이유로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빨갱이라면 일본이나 미국에도 호주제가 없는데 그들 역시 김정일 추종자인가?

③ 그런 논리라면 기존의 호적법이야말로 가정을 파괴하는 주범이다. 딸은 결혼과 동시에 부모와 남남이 되지 않는가? 결혼하면 분적을 해야 하는 둘째 아들 셋째 아들은 또 어떤가?

④ 근친은 성씨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촌수로 구분한다. 호적이 없어져도 전산화된 개인 가족 관계망이 부계 모계로 금방 촌수를 계산해 준다.

거의 개콘 수준이다. 이런 허망한 논리에 반박하기는 어렵지 않다. 조금 더 논리적인 논거들은 다음과 같다. 필자는 중급 수준으로 등급을 매겼다.

①개나 말의 족보도 기록하는데 왜 인간의 족보를 폐기하려 하는가? 부계 혈통은 인류의 역사다.

②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흔들리고 가족이 흔들리면 민족 공동체가 흔들린다.

③신생아의 남녀성비와는 반대로 노년층에서는 여전히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사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④성은 하나의 약속이므로 이를 깨는 것은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⑤성씨 제도와 혈통주의도 미풍양속까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엄연히 우리 전통이다.

저자의 반론을 살펴보자.

①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등장으로 부계 혈통 우선론은 근거를 잃었다. 내 조상은 아버지의 아버지만 있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의 어머니도 있다. 아버지 성씨 사용을 강제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지금은 ‘없었다’가 되겠다.)

② 민족의식을 구실로 호주제 보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여자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왔다는 사실에 어떻게 반론을 펼 것인가?

③ 초등학생 남자들에게 너희가 커서 할머니 나이 여자랑 결혼하고 싶은지 물어 볼 것.

④ 그 약속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소수라도 존재한다면 질서를 파괴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약속을 깨야 한다.

⑤ 우리가 성씨와 혈통에 집착한 것은 유교가 뿌리를 확실하게 내린 17세 중반 이후의 일이다. 그전까지 우리에게는 그런 전통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고급 수준이다. 이것들은 반박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③번과 ④번은 고급 수준은 아니지만 ①번과 ②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감정적이 되면서 흥분해진 결과, 내뱉은 논거들이다.

①우리 사회는 여자들의 진출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

②호주제 때문에 여자들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침해받지 않는다.

③호주제폐지론자들의 목적은 여성 우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④호주제가 폐지되면 남자는 씨뿌리개 정도로 추락할 것이다.

⑤호주제가 폐지되면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진다.

⑥그럼으로써 법-정의-공공성 등의 가치가 약해진다.

저자는 호주제가 가부장제 사회의 이론적 지탱이 되고 있다고 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제사 때나 고부 갈등으로 눈물 흘리는 여성들은 분명히 있어 왔고 그 숫자가 적지 않기에 그들의 권리는 호주제 때문에 침해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이다. 그

리고 ③번과 ④번은 여성이 새로운 지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당당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지향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반박하고 있다. ⑤번과 ⑥번은 아버지의 역할 중에서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진 것을 바로 잡아 수평적인 가족 문화를 만들자는 거지, 집안의 주도권을 ‘가부장’에서 ‘가모장’으로 바꾸는 게 아님임을 분명히 적시한다.

저자의 주장은 아니지만 필자라면 다음과 같이 추가 반론을 폈을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게 애초부터 따로 있었던가? 남성적 가치와 여성적 가치를 나누는 시도는 이분법으로 지양되어야 할 태도 아닌가?

이번에는 최고급 수준이다. 이런 주장은 인문학의 세례를 받은 왼쪽 먹물(저자는 가부장 좌파로 표현한다)들이 한다. 가장 정교한 논리를 구사한다.

①페미니즘은 진보가 아니다. 그 이유는 보편적 인류애 내지 인간애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②일부 잘난 여자들의 페미니즘 때문에 계급 모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흐트러진다.

저자는 이에 진보/보수 개념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윤이상이나 전태일 등이 보편적 인류애를 발휘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민족 통일이나 노동자의 권리란 게 여성의 권리보다 우월하다는 시각은 편견이다. 일부 잘난 여자들이 페미니즘을 주도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도 남성들의 편견이 숨어 있다. 판검사나 의사들이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는 개혁 운동을 펼치면 이들에게도 ‘일부 잘난 판검사와 의사들의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칭얼거림’으로 비꼴까?

어떤가? 저자는 상대의 반론에 충분히 반박했는가? 아니면 미흡한가?

이제부터 사족. 한 남학생은 분을 못 참으면서 내게 도와 달라고 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필자도 저자의 주장에 대부분 동감하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는 도와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학생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쌤의 의무라고 생각해 도움을 주고자 한다. 어떤 반론이 가능할까?

호주제 폐지 후 예상되는 부작용을 좀 더 고민해 보자. 그런데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다. 멀쩡한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 됐다든지, 호주제가 폐지된 것을 비관해서 자살한 사람이 나와 줘야 하는데 없다. 이건 아니다.

호주제와 가부장제를 남성 역차별 문제로 관점을 돌리고 그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자. 군대 때문에 남자들이 피해를 입으니 군대 다녀온 남자에게 가산점 등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설득력 있다.

여자들은 너희들도 임신하라고 반박하지만 이 반박 논리는 말이 안 된다. 군대와 임신은 다른 범주다. 여학생들은 생리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비교하는 범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만이나 이스라엘에선 국방의 의무를 여자에게도 부여되는 병역의무로 이해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역시 잠정적으로 유효하다. 국민개병제가 모병제로 바뀌면 이런 주장도 억지 주

장이 될 것이다.

결정적인 반론은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저자를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은 세상을 남과 여라는 창으로 본다. 이 프레임이 잘못 됐다고 딴죽을 거는 것이다. 하위 수준의 프레임이라고 물고 늘어지자. 상위 수준의 정밀한 프레임은 성공한 남자와 성공한 여자, 실패한 남자와 실패한 여자로 보는 것이다. 성공한 여자와 실패한 남자 중에서 누가 더 기득권자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들을 비교해 보라. 당연히 백인 여자가 기득권자다. 성공한 여자의 기득권을 문제 삼고 이를 권력화된 페미니즘으로 색칠하는 것이다. 실제로 페미니즘과 성공한 여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일례로 여학생들에게 부모 성 함께 쓰기를 권했더니 모두가 자신이 ‘성공하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조건부 찬성의사를 밝혔다.

남학생들은 단 한 명 예외 없이 그럴 생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아버지 성을 물려 받든 어머니 성을 중간에 넣든 새로 성을 만들어 쓰든, 성 없이 살든 누가 관심이나 가져줄까?

요즘은 1등 소녀들을‘알파 걸’이라고 부르지만 알파 걸들이 떠받들어지는 동안 2등, 30등, 꼴등 여성은 아무도 존재를 기억해 주지 않는다. 경쟁에서 뒤쳐진 남자의 처지는 경쟁에서 뒤쳐진 여성의 처지와 마찬가지, 아니 그 이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남과 여라는 프레임은 성공과 실패라는 프레임 앞에서 무력하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 때문일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녀를 모두 피곤하게 한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끊임없이 희생하고 있기 때문에 남과 여의 차이가 의미 없다는 주장을 펴 볼 것. 가장 설득력 있는 반박 논거가 될 것이다. 가부장제보다 더 무섭고 힘이 센 놈은 신자유주의라는 이야기다. 누구 말대로 성차별보다는 가난이 더 고통스러운 편이니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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