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만난 김연수 "그는 천생 작가"
눈으로 만난 김연수 "그는 천생 작가"
  • 북데일리
  • 승인 2007.11.0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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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지난 10월 29일 저녁 6시30분. 3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초대된 독자들이 작가 김연수와 행복한 만남을 가졌다. YES24와 문학동네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연우 소극장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묘한 구조의 극장 안, 출입구와 마주한 무대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의자. 기대로 반짝이는 수십 쌍의 눈이 조명기보다 더 밝은 빛을 발할 무렵. 김연수 작가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모노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무대. 꼭 뭔가 고백해야 하는 자리 같다며 수줍은 너스레를 떨던 작가는 양쪽 객석의 독자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메리 올리브의 시 <기러기>를 낭독하는 것으로 만남의 문을 열었다.

이는 그가 최근 발표한 장편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제목을 선사한 시다. 이 작품은 2005년 겨울부터 2007년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이란 제목으로 연재됐다. <작가세계>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처럼, 차라리 <모기인 동시에 하마인>이 낫겠다던 딸의 조언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제목을 바꾸게 되었다고.

소설을 시작할 때 작가의 머릿속에는 어렴풋한 상이 하나 있었다. 버려진 누군가. 모든 끈이 떨어진 상태에서 홀로 남은 존재. 무원고립이 바로 그것이다.

병실 창문으로 바깥세상을 내다볼 때, 혹은 살아가다 문득문득, 작가는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고독과 공포를 경험한다고 했다. ‘현실이 한 발 뒤로 물러선 듯’한 느낌, 패닉 상태. 이러한 작가의 경험은 책의 한 부분, 삼촌의 죽음을 목격한 정민이 현실과 꿈을 오가는 장면에서 생생하게 묘사된다.

“집들이며 전봇대며 상점의 간판들이 일순간 쏟아지는 퍼즐 조각처럼 갈라지더니 원을 그리며 돌았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정민은 ‘아하, 이건 꿈이구나. 깨어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다시 온전히 맞춰진 거리의 풍경이 생생하게 보였다…(중략)…그래서 꿈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거기는 여전히 삼촌의 사체가 방에 놓인 세계였으므로 그건 현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이건 꿈이구나. 깨어나면 다 사라지겠구나’라고 생각하면 모든 게 산산조각이 나면서 흩어졌다가, 다시 온전하게 맞춰진 거리의 풍경이 들어왔다. 깨어나면 꿈이었고 깨어나면 꿈이었고 또 깨어나면 꿈이었다.”(28-29)

책의 씨앗이 된 하나의 사건은 독일 대사관이 주관한 한 프로그램이다. 한국 작가의 독일 체류를 보조해준 그 프로그램 덕에, 얼떨결이었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작가는 독일 땅을 향해 출발했다. 그곳에서 그는 과거 귀족이 살았을 법한 17세기 대저택에서 3개월간 머물렀다. 작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아침 먹고 설거지, 점심 먹고 설거지, 저녁 먹고 설거지…… 그런 생활이었죠. 날 찾는 사람도 없고, 꼭 해야 할일도 없는.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까마득한 천장을 바라보며 밤마다 지난 세월동안 그 방에서 묵었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떤 옷을 입었을까, 자살한 사람도 몇 명 있었을 테고…….”

카페에 나가 앉아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말이 통하면 그들의 이야기라도 엿들을 수 있으련만 그 마저도 불가능하니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들의 표정을 관찰하며 대화의 내용을 추측하는 일뿐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궁금할 수 없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결국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뭘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그때 든 생각이 바로 이야기로만 구성된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것. 한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다른 테이블로 옮겨가 또 다른 이야기를 듣는 식의, 이른바 ‘라운지 소설’이다.

‘이야기의 긍정적인 효능’을 믿는 작가는 자신처럼, 혹은 예수나 석가처럼 ‘무원고립’을 경험하고, 그 경험 끝에 다시 세상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과 순간이 전부라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조리 끌어다 소설 안에 넣어보고 싶었다.

결국 작가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두 장의 사진-입체 누드 사진과 노을 사진-을 놓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진들을 설명하는 소설을 썼다. 사진에 얽힌 실제 이야기가 어떤 것이든, 작가는 화자의 입을 빌어 사진에 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늘 작가의 가슴에 오래 남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찡그리거나 놀란 표정 등이다. 그런 표정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는 ‘천생 작가’ 김연수는 이날 자신의 과거 한 귀퉁이의 이야기도 풀어놨다. 사연은 이랬다.

<7번 국도>를 발표하고 인터뷰 답안까지 준비했지만 단 한건의 인터뷰 요청도 들어오지 않았던 일, 신문에 기사 몇 줄 넣어줬다며 주간지 6개월 치를 정기구독 하라는 바람에 얼떨결에 신청하고 끊지 못해 곤혹을 치른 일. 독자들의 무반응에 힘이 빠지던 세월이었다.

자신의 재능에 의심을 품던 그 시절, 다니던 여성지 출판사에 뼈를 묻겠다는 결심으로 ‘여성지 포멧’으로 변신한 작가는 쫄티에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나타나 주위사람들의 연민과 걱정을 사기도 했다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가 맡던 여성지마다 폐간되었고, 마지막 출판사를 다니며 그는 죽기 살기로 소설에 매달렸다. 마지막으로 온 힘을 쏟아보자는 심정으로 퇴근 후 매일 3시간씩 글을 썼다.

“밤마다 소설을 쓸 때, 창문 앞 책상 위에 놓인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잖아요. 그러면, 그게 어떤 느낌이냐 하면, 꼭 비행기를 몰고 막 밤하늘을 나는 느낌이에요. 아주 행복하고 자유로운 느낌. 그런 느낌이 밀려들 때가 있어요.”

그런 경험을 한 이후부터는 소설 쓰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소설을 쓴다는 사실과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렇게 계속 쓸 수만 있으면 좋았다. 독자나 평론가들의 평가나 책의 판매 부수 같은 데는 흥미가 없었다.

“계속 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어요. 쓰는 순간 보상을 받는 거죠. 너무 좋아서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건이 안 되면 지금처럼 직장을 다니면서라도, 안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라도 쓰자, 하는 생각.”

당시 작가의 머릿속에 독자는 없었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한없이 건방진 말도 하고 다녔다고. 자신이 사전을 찾아가며 최선을 다해 쓴 문장을 독자도 사전을 찾아가며 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소설 쓰는 일이 마냥 좋았고 다음 청탁만 들어오면 아무 걱정이 없었던 시절. 하지만 그러한 강렬한 감정이 흐려진 만큼 그의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소설의 완벽성을 추구하며 소설만 생각하고 소설만 보고, 영화조차도 생각을 흐트러트릴까 보지 않았던 그.

지금 그는 소설을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혼자’ 사전 찾아가며 읽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함께’ 읽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무진장 커졌어요. 아마 앞으로는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 소설을 쓰게 될 것 같아요.”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샘솟는다는 작가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소설을 ‘쓰는’ 일이다. 작품 발표 후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정작 글을 ‘쓸’ 시간이 거의 없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전한 작가는 또 다른 ‘이야기’는 또 다른 소설이 나오면 하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긴 ‘모노로그’를 마쳤다.

이어진 독자들의 질문 시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한 교사가 ‘소설가를 희망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작가는 20대 초반 지녔던 엄청난 열정을 떠올렸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열망만 품은 채 미숙하던 시절, 100전 100패의 그 시절에도 그는 ‘근거 없는 확신’만은 놓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게 되어 있다, 그렇게 살게 되어있는 사람이다, 하는 확신. 그런 근거 없는 확신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도 작가는 소설을 완성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다만 다음 소설은 이것보다 더 잘 쓸 것 같다는, 훨씬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라디오 피디가 꿈이라는 한 독자가 후일 자신이 진행할 라디오 문학 프로 진행에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다. ‘말을 잘 못한다’고 답한(그러면서도 연락을 달라고 한) 작가. 하지만 한 시간 반가량 이어진 그의 ‘이야기’를 들은 독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막힘없이 시종 온화하고 조근 조근한 목소리로 국경을 넘나들고 시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와 ‘소통’한 독자들은 앞으로 작가가 들려줄 말(=이야기)에 이미 목마른 상태다.

이러한 목마름을 느끼는 건 비단 그 자리에 초대됐던 독자들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소설 속에서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며 ‘염화미소’를 지은 수많은 독자들 역시 그러할 터다.

[오정아 시민기자 chanseu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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