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정말 당쟁으로 망했을까?
조선은 정말 당쟁으로 망했을까?
  • 북데일리
  • 승인 2007.11.02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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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1 : 조선이 정묘호란에서 청에게 지고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자 청은 볼모를 원했다. 세자(소현세자)와 대군 이외에도 판서의 아들들을 인질로 원한 것이다. 평소에는 아귀처럼 관직에 달려들던 관료들이 이때는 서로 판서를 맡지 않으려고 다투었다고 한다.

풍경 2 : 사도 세자는 늙은 영조가 자신에게 대리청정을 맡기자 당시 야당이었던 소론을 여당이었던 노론의 견제 세력으로 키우려고 한다.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와 삼촌은 노론의 핵심이었다.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은 사위 대신 당론을 택해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데 앞장을 선다.

‘조선은 당쟁으로 망했다’란 주장은 일제가 우리 역사를 폄훼하기 위해 유포한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해 왔다. 그 반동이라고나 할까? 우리 역사, 특히 근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식민사관의 잔재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그 추세를 반영해 붕당 정치를 긍정적으로 바라 볼 것을 요구하는 논술 시험이 고려대학교 수시모집에서 출제되기도 했다.

하지만 붕당을 좋게 볼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조선이 당쟁으로 망한 사실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조선 시대 당쟁에서 갈등과 분열이 한국인의 본성이라는 것을 억지로 끄집어내려는 일본의 태도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평가할 것은 정확히 평가하고 반성할 것은 제대로 반성하는 것이 옳다. 이 책의 제목은 ‘조선왕 독살사건’이지만 필자에게 ‘조선은 왜 망했는가’로 읽힌 까닭은 이런 연유에서였다.

왕조는 당연히 흥망성쇠를 거쳐 망하게 되어 있다. 천년만년 이어지는 왕조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순수한 사랑만큼이나 어려운 법이다. 대개 중국의 왕조들이 200~300년 단위로 교체된 것에 비해 조선은 500년 이상을 버텼다. 그것도 국가 전체가 초토화되는 전쟁을 몇 번이나 치르고도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이 그렇게 오래 버틴 이유는 실권 없는 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산군을 마지막으로 중국의 황제나 로마의 황제처럼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왕은 사라졌다. 그 후부터는 사대부가 풍경 1처럼 자신과 자신의 가족, 혹은 풍경 2처럼 자신이 소속한 당의 이권을 위해 왕을 조롱하고 권력을 전횡했다.

그들은 살아있는 조선의 군주보다 이미 죽은 남송의 주희를 더 떠받들었다. 왕이 무엇을 해보려면 주자학의 대가 주희의 이름을 빌려 사사건건 왕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실권이 없는 왕에게는 당연히 책임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것은 백성과 백성의 안위였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조선은 식물인간 상태에서 죽기 전까지 절반의 인생을 침대 위에서 보낸 환자나 다름없다.

이 책은 독살설에 휘말렸던 8명의 조선 왕들의 죽음에 얽힌 의혹과 수수께끼를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파헤쳤다. 연산군을 쿠데타로 밀어낸 사대부들에게는 견제 장치가 없었다. 왕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후부터는 자기네들끼리 치고받았다. 그들은 북벌 같은 국가 중대사를 놓고도 다투었지만 왕이 죽자 왕의 어머니인 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이냐 같은 쓸데없는 논쟁도 많았다. 말로만 춘추대의를 외쳤고 실은 기득권 확보가 목적이었다.

당시 조선은 집권이 정의가 되고 실권이 불의가 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 사회였다. 그들의 싸움은 생사를 건 권력 투쟁이었다. 승자독식은 지금이나 예나 마찬가지여서 이기면 자신을 포함해 온 가문이 몇 대를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지면 종의 신분으로 격하되거나 심지어는 가족, 친가, 처가 등 삼족이 멸문지화를 맞기도 했다. 민주주의만 피를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독재 역시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다.

물론 왕도 반격을 했다. 숙종처럼 사대부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해 왕의 권력을 어느 정도 행사한 이도 있었고 정조처럼 사대부의 권력을 힘으로 되찾아오려다 강한 저항에 봉착해 타살(의혹이지만 정설로 굳어져가고 있다)된 이도 있었다.

사대부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우리는 영조를 힘이 센 군주로 생각하지만 그런 영조도 말년에는 신하가 하교를 받아쓰기를 거부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저자는 사대부와 왕의 갈등에서 왕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현세자가 집권을 못한 사실과 정조의 개혁 정책이 수구세력의 반발로 중동무이로 끝난 것을 아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하지만 조선이란 나라는 왕의 개인 회사가 아니고 왕과 사대부가 함께 다스리는 주식회사라는 사대부들의 논리가 정조의 개혁 정책보다 오히려 진보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은 왕권을 견제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국가의 안전이나 백성의 삶보다 일신이나 자기 가문의 안녕을 더 중시한 태도였으리라.

통합 논술 시대에 역사 논술은 경제 논술과 함께 기존의 철학 논술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서울대가 선봉에 섰다. 모의고사에서 서울대는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를 소재로 문항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 해 수시 2학기에서는 삼국사기를 다시 편찬하도록 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과거의 문제를 오늘날 관점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백성은 안전에도 없고 권력 다툼에만 몰입했던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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