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읽는 `빨간 책`
우울할 때 읽는 `빨간 책`
  • 북데일리
  • 승인 2007.10.2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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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주말까지 급경사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우울의 페달은 밟지 않아도 가속화되어 쉬이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일요일을 흠뻑 적신 비는 저를 바닥까지 한껏 스며들게 했습니다. 한기가 들어 서러웠던 주말이었습니다.

따끈한 차를 마셔도, 어머니 옆에 가서 치근거려 봐도 기분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방으로 와 조용히 배를 깔고 누워 우울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방법은 한 가지, ‘영이 철이 크로스’를 외치듯, 역시 최후의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빨간 책, 나와라!

제가 아끼는 빨간 책,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는 책, 바로 조엘 에글로프의 <장의사 강그리옹>(현대문학. 2001)입니다. 책장을 펴는데 종이가 낱장 낱장 빠져나와 슬픔을 배가시켰습니다. 떡제본의 한계죠.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들도 코너에 몰렸을 때, 우울할 때, 읽는 책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프랑스 작가 조엘 에글로프의 소설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혹자는 블랙 유머 혹은 냉소라고도 하는데, 저는 읽을 때마다 매번 즐거운 소설입니다.

머리에 상황을 그리며 웃음 지을 수 있으며, 별다를 것 없이 느껴져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의사 강그리옹>은 영화로 만들기에 가장 좋은 소설에 주는 상인 ‘알랭 푸르니에 상’을 받기도 했네요.

흔히 별다를 것이 없다고 하면, 책 속에 담긴 의미 자체도 무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조엘 에글로프의 소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담긴 메시지도 철학적 성찰이 꽉 담긴 것이거니와, 재치있게 그려진 일상은 군더더기가 없고 아주 세련되고 정제된 느낌입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세련된 그런 느낌, 아시나요?

조엘 에글로프는 70년생이니, 비교적 젊은 작가입니다. 작년에 조엘 에글로프가 ‘2006, 서울 젊은 작가들’ 행사에 왔었다지요. 그 때 참여했던 함정임이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는데, ‘글을 쓸 때마다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찾는 데 성공하면 독자와의 만남은 훨씬 더 진지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면서요.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두 종류의 인간이 있지. 바로 산파와 장의사야. 하나는 환영하고 다른 하나는 환송하거든. 사람들은 이 둘 사이에서 지지고 볶고 사는 셈이야. (15p)

장의사 강그리옹의 말입니다. 철학적 사유로 삶을 꿰뚫어 보는, 감탄이 절로 나는 대사입니다. 그는 한 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죽기를 간절히 바라는 장의사입니다. 때마침 한 사람이 죽게 되면서 생기는 사건들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는 소설이 바로 <장의사 강그리옹>입니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설정이 비슷해 장문일 감독의 <행복한 장의사>(2000)를 떠올리며 웃음 짓기도 했습니다.

<야생초 편지>(도솔. 2002)의 작가 황대권은 살면서 ‘죽음철학’이 꼭 필요하다고 하며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이 자신의 철학이라 하였습니다. 죽음도 삶의 연장선상이고 큰 흐름 상의 한 부분이므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개인의 실존 현상이 죽음이기도 합니다. 살아있기에 죽을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누구도 대신 체험해줄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죽인 게 무슨 살인이야. (181p)

삶은 아이러니입니다. 사람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장의사, 맞은편에 위치한 술을 팔지 않는 카페, 살아있는 송장. 삶이 이러한데, 죽음 또한 아이러니겠지요? 작가의 또 다른 소설, <해를 본 사람들>(현대문학. 2006) 역시 희화화된 인물과 아이러니를 드러내주고 있는 소설이니 같이 접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 <해를 본 사람들>은 노란 책입니다.

조엘 에글로프는 삶의 한 단면을 뚝 잘라 생동감 있게 보여주기 때문에 인물이나 상황묘사에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가 많습니다. 또한, 그는 서사를 치밀하게 구성하기 보다는 시적인 산문으로 현실을 비추기에 더욱 빛이 나는 작가입니다.

에글로프의 눈에 비친 세상, 신선하고 재미있으니 일독을 권합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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