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사랑 끝에 발견한 `사과 한 알의 행복`
긴 사랑 끝에 발견한 `사과 한 알의 행복`
  • 북데일리
  • 승인 2007.10.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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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미국의 유명한 음식 평론가 루스 라이클이 쓴 <사과 한 알의 행복>(달과소. 2004). 발사믹 식초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가리비 파스타 등 독특한 레서피들이 30가지나 담겨있는 유용한 책이다. 와인을 비롯한 각종 식품 정보들을 비롯해 책 내용의 반 이상이 요리와 관련된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요리 에세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보다는 차라리 달콤 씁쓸한 사랑 이야기에 가깝다. 요리를 통해 상실을 치유하고 인생과 사랑을 발견한다는 설정은 지난여름에 개봉한 영화 <사랑의 레시피>와도 닮았다.

두 작품 모두 요리와 사랑을 주제로 했지만, 그 속의 깊이는 차원이 다르다. 영화는 깐깐한 완벽주의자 주방장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와 헐렁한 낙천주의자 부주방장 닉(아론 에카트) 사이에 불꽃이 튀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케이트의 사랑 상대는 단 한명 닉뿐이다. 복잡하게 삼각관계 등으로 얽힐 일도 없다.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따르면 `편리하고 간단한 즉석 요리`라고 할만 하다.

반면, <사과 한 알의 행복>은 작가 루스가 실제로 겪은 진솔한 삶이 묵직하게 담겨있다. 결혼, 혼외정사, 아버지의 죽음, 이혼, 재혼, 그리고 불임과 입양까지. 복잡 미묘하고 풍부한 맛을 지님 오래 묵은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남자도 3명이나 등장한다. 그녀는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요리를 통해, 상실감과 상처를 극복하며, 살아갈 힘을 얻고, 그 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발견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대학 시절에 만난 더그는 그녀의 첫 남편이다. 서로를 발견한 행운에 경탄하고, 11년 동안 서로를 완벽하게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더그의 예술작품들이 드디어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되면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더그는 아이보다는 작품이 먼저였다. 바라보는 지향점이 다른 두 사람의 대화는 갈 곳 없이 계속됐다.

루스는 그저 묵묵히 게살 케이크를 만들 뿐이다. 지글거리는 버터에 지져낸 쫀득한 게살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자, 마음 깊이 만족감이 밀려온다. 그녀에게는,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가 담긴 요리이다. 하지만 "더그가 여기 있었다면, 정말 맛있게 먹었을 텐데...."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요리가 곧 사랑이며 치유임을 절절히 알려주는 대목이다.

더그의 빈자리를 채운 남자 콜먼은 요리 잡지사 편집자이다. 그들은 영악하게도 매순간을 즐기며 서로를 실컷 이용했다. 그와 함께 루스는 66년산 크루그 샴페인과 푸아그라, 그리고 볶은 달걀을 얹은 송로버섯을 한입 한입 맛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섹스를 맛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럴 거라고 줄곧 상상해왔어요."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나누어 먹는 행위란,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을 나누는 섹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더그는 여전히 그녀가 돌아가야 할 현실이다. 더그가 없는 미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그와 콜먼,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그녀를 지켜보는 일이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푸아그라, 송로버섯 만큼이나 묵직하고 느끼하다.

호사스러운 미식 향연에 질려버릴 즈음에, 드디어 사과 한 알의 행복을 전해줄 남자, 마이클이 등장한다. 남성미 넘치게 잘 생겼고 당당해서 알 수 없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재수덩어리, 마이클. 하지만, 그가 `갑시다`라고 하자, 그녀는 즉각 따라나섰다. 그에게는 그녀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의 아파트에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렬하게 예감한다.

`나는 마음을 다치게 될 것이다.`

주방에 몇 시간이고 서서 손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얼음물과 버터로 고구마 파이 반죽을 만들어도 그를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을 편하게 안정시켜 주는, 위안이 필요한 때를 위한 가장 완벽한 처방전, 버섯 수프도 소용없었다.

남편 더그와 마이클,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그녀는 태국 방콕으로 도망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매콤한 태국 요리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의 관심사로 나의 마음을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남자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좇는 사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법을 아는 사람. 그와 함께였기에, 그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더그 없는 인생` 그리고 엄마가 기대하던 착한 딸을 과감히 뒤로 밀어둘 수 있었다. 눈길 한번 주는 일 없이. 현재, 루스는 현재 남편과 아들 그리고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맨해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루스와 마이클이 거쳐 온 인생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이혼과 재혼, 그리고 불임과 입양. 어느 곳으로도 이어져 있는 것 같지 않은 험난한 인생 길.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가 찾아 낸 `사과 한 알의 행복`은 이렇다.

"가끔은 최선을 다하더라도 충분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만 해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이런 깨달음을 얻기까지 그녀가 겪은 농밀한 사랑의 기쁨과 소박한 행복, 깊은 절망과 슬픔을 여기에 모두 담을 수는 없다. 복잡 미묘한 와인의 맛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달콤 씁쓸한 와인을 맛보는 일은 여전히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사진 - ‘사랑의 레시피’ 스틸컷)

[윤지은 시민기자 wisej@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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