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서 쑥쑥 자라는 詩 `땅을 기뻐 노래하라`
논밭서 쑥쑥 자라는 詩 `땅을 기뻐 노래하라`
  • 북데일리
  • 승인 2005.10.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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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밑에 콩 심었더니 풀은 무성하고 콩싹 드물다. 새벽부터 일어나 거친 풀 쳐내고는 달빛을 받으면서 괭이 메고 돌아온다.” (도연명의 ‘歸園田居’중에서)

자연을 벗하여 살고자 함은 도연명의 오랜 꿈이다. 1600년전 도연명이 그러했듯, 시인은 늘 마음 한켠에 한그루 나무가 되어 흙에 뿌리내리고 싶은 것이다. 시인 하종오는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무언가 찾아올 적엔>(창비. 2003)에서 어째야 시를 쓰는 지 종알종알 일러준다.

“고층빌딩의 매일매일은 의태로 시작한다./....../중심을 가졌거나 안 가졌거나/내 것을 적게 주고 남의 것을 많이 받아내려는 즐거움도/똑같아서 불평하거나 감사하는 말투도 서로 똑같다./고층빌딩은 유리창이 모조리 사람들과 똑같아서/안에서는 밖이 보여도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인다.” (‘편안한 의태’중에서)

우리나라의 사무원은 마치 성직자와 같다. 같은 양복에 같은 음식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잦은 음복을 감내하는 희생정신은 어쩌면 성스럽기까지 하다. 시인도 `시를 사무하는` 성직자로서 겪는 아픔이 작지 않다.

“마늘 한 쪽 찧으려고/도마 위에 올려놓고/식칼을 들고 똑바로 세워/손잡이 밑을 똑바로 내리친다//......//마늘 찧으면서 생각해보면/가격할 때 잘 튀는 것은 둥글다/둥근 것은 공 둥근 것은 엉덩이 둥근 것은 가슴/무엇보다도 배가 고파 쓰린 마음은 속이 둥그렇지만/누군가가 살짝 쳐도 튀지 못하고 파삭 금이 간다‘ (’무엇보다도 둥근 것‘)

누구에게 고해성사 할 수도 없는 외로운 성직자, 가난한 사무원의 가슴에 난 상처가 깊다. 시인은 금간 가슴을 보듬고 강화도 산골로 잦아들어 간다.

“산수유 한 그루 캐어 집에 옮기려고/산에 가만가만 숨어들었다./나무는 뿌리를 밑으로 밑으로 내려놓았겠지./자그마한 산수유 찾아 삽날을 깊숙이 꽂았다./이제 한 삽 뜨면 산에게서 내게로 올 게다./....../삽자루에 힘을 주어도 떠지지 않아서/뿌리 언저리 손으로 파헤쳐보았다./산수유는 뿌리를 옆으로 옆으로 벌려놓고 있었다./나는 삽날 눕혀 뿌리 밑을 돌아가며/둥그렇게 뜬 뒤 밑동 잡고 들어올렸다/....../산에 있던 모든 산수유들 아픈지 파다닥파다닥/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초봄이 오다’)

대나무꽃처럼 한꺼번에 꽃을 피우는 산수유를 보면서, 아픔을 견뎌온 시인의 마음에도 봄이 온다. 마침 옆집에 철없는 며느리가 있어 모처럼 시인의 입가에 웃음이 밴다.

“외지 떠돌다가 돌아온 좀 모자라는 아들놈이/꿰차고 온 좀 모자라는 며느리년 앞세우고/시어미는 콩 담은 봉지 들고 호미 들고/저물녘에 밭으로 나가고//입이 한 발 튀어나온 며느리년 보고/밥 먹으려면 일해야 한다고 핀잔주지는 않고/....../어둡기 전에 일 마쳐야 한다고 눈치주지는 않고/콩 세 알씩 집어 톡톡톡 넣어 묻고//....../저 너른 밭을 놔두고 뭣 땜에 둑에 심는다요?/이 긴 하루에 뭣 땜에 저녁답에 심는다요?/며느리년이 어스름에 묻혀 군지렁거리고/가장자리부터 기름져야 한복판이 잘돼지./새들도 볼 건 다 보는데 보는 데서는 못 심지/시어미도 어스름에 묻혀 군지렁거리고” (‘시어미가 며느리년에게 콩 심는 법을 가르치다’중에서)

상전이 따로 없다더니 참말로 아들만 아니면 그냥 대번에 내쫓아버리고 싶을 터인디 잘도 참네요. 눈치 없는 며느리년 밭일 안 할거면 집구석에서 아들놈하고 콩심기 실습이나 할 것이지 궁금한 것도 많기도 하네.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새가 날아와 씨째로 낱낱 쪼아먹지.//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벌레가 기어와 잎째로 슬슬 갉아먹지//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나머지 네 먹을 만큼만 남는다.” (‘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사람이 먹고’)

알겄냐, 이 써걸것아. 그나저나 아들놈하고 이냥반은 어디서 뭐한다냐. 비오기 전에 나락 비어야 하는디. 아이고 폭폭혀서 못살겄다 못살어.

“장에 가는 차비 아낄 요량으로/남의 차 얻어 탔다가 도랑에 처박히어/부러진 손모가지 깁스한 아비는/장터에서 개인택시 하는 아들놈 불러들였다//....../아비는 아랫둑으로 가서 고래고래 소리질렀다/길바닥에선 물 피해 길 빨리 달려도 되지만/논바닥에선 물 흘러가게 길 내며 천천히 가야 돼.//......//논일하는 동안 영업 못한 아들놈은 일당 계산해/든손에 쌀 찧어 택시로 장에 실어 날랐다/결국 반타작밖에 못한 셈이지만/아비는 빈 들 바라보고 뻥끗 웃었다” (‘아비는 입으로 농사짓고 아들놈은 손으로 농사짓다’)

논밭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시인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하여 비로소 세상을 부드럽게 바라보는 눈을 얻음에, 기뻐 귀거래사를 노래한다.

(그림 = 밀레 作 `이삭줍기`)[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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