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 서유미, 유쾌한 `욕망 꼬집기`
젊은작가 서유미, 유쾌한 `욕망 꼬집기`
  • 북데일리
  • 승인 2007.10.1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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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무겁고 음울한 소재를 경쾌한 필치로 재미있게 그려낸 소설이 있다.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판타스틱 개미지옥>(문학수첩. 2007)이 그것이다.

작가 서유미는 백화점을 배경으로 객체화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과 탐욕, 허영 등을 버무렸다. 이는 자칫 끝도 없이 어두워질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작품은 시종일관 가볍고 발랄하다. 주제가 지닌 중압감은 없어졌고 담백한 즐거움만 남았다. 이는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묵직한 메시지를 엿보는 와중에 단숨에 읽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원인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섬세한 묘사와 독특한 형식의 사건 전개를 들 수 있다.

다이어트에 성공은 했지만 과거의 건강과 친절함을 잃은 지영,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미선,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장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소영, 스트레스를 쇼핑과 클레임으로 푸는 현주, 백화점 근처에서 상품권을 팔고 때로는 성매매도 강요당하는 영선, 돈의 유혹에 끌려 유부남과 관계를 맺는 정민.

이들은 각각 자본주의 사회의 일그러진 면을 대표한다. 모두 백화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실제 부나 명예와는 거리가 멀다. 백화점에 전시된 물건보다 하찮은 가치로 평가 받는다. 현 시대의 주변인을 상징하는 셈이다.

작가는 이들을 내세워 인간의 헛된 욕망을 꼬집는다. 근엄한 충고나 질책을 통해서가 아니다. 그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들의 심리를 풀어낼 뿐이다. 여기서 독자는 뜨끔함을 느끼거나 통쾌함을 맛볼 수 있다.

다음의 한 대목은 이와 같은 특징을 확연히 보여준다.

“무이자 할부 제도는 소비를 부르는 경쾌한 주문이자 달콤한 덫 같다.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도 몇 달에 나눠서, 라고 생각하면 가격이 확 줄어 버리는 것 같다. 싸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레서 스스로 걸어들어가서 철컥하고 걸려 버리고 만다. 소영은 갚아야 할 할부금 때문에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아직 블랙 카디건이 팔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살짝 안도했다.”

내용의 진행도 특별하다. 앞 장에서 별 존재감 없이 잠깐 등장했던 손님이나 직원이 다음 장에서 주인공이 되는 점이 그렇다. 이렇게 각 장마다 벌어지는 일은 앞 혹은 뒷장, 간혹 훨씬 뒤의 장과 끊임없이 맞물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보이는 이런 구성은 소설의 재미를 배가 시킨다. 시간상의 변화에만 몰두하는 것보다 신선하게 다가와서다. 읽는 이는 계속 새로운 무언가가 벌어질까 기대하게 되고, 이때 긴장감은 적절히 유지된다. 극의 빠른 전개와 이로 인한 몰입 또한 쉽다.

책을 쓴 서유미는 33세의 젊은 작가다. 글을 쓰기 위해 직장과 안락한 삶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런 열정과 용기가 빚어낸 첫 번째 결과물은 성공이라 할만하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예리한 시각과 재치가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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