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도 혀를 내두른 `전설의 여기자`
등소평도 혀를 내두른 `전설의 여기자`
  • 북데일리
  • 승인 2005.10.0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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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리크게이트(Leak Gate)`사건에서 취재원 공개를 거부해 법정구속됐던 뉴욕타임즈(NYT) 여기자 주디스 밀러가 85일 만에 풀려났다. 석방사유는 문제의 취재원이 밀러의 기자정신을 높이 사며 취재원 보호약속을 해제해도 좋다고 입장을 밝혔기 때문.

밀러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노출 사건인 `리크 게이트`에 휘말려 취재원 공개거부로 인한 가장 오랜 수감기록을 갖게 됐다.

수감명령을 받은 후 그는 "기자가 취재원과의 약속을 지켜준다는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자기 역할을 할 수 없고 자유언론도 있을 수 없다."며 "내가 또 알고 있는 것은 가장 자유롭고 가장 공정한 사회는 정부가 밝히기 원치 않는 정보를 보도하는 자유로운 언론이 있는 사회라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언론 자유의 순교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주디스 밀러는 오사마 빈 라덴과 테러조직 알카에다 관련 보도팀의 일원으로 2001년 풀리처상과 뉴욕 세균전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기여, 2001년 에미상을 수상한 NYT의 행동파 여기자이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저널리스트 중 한사람인 이탈리아 출신의 종군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75)를 연상시킨다.

오리아나 팔라치는 최초의 종군여기자였으며 걸프전을 가장 잘 보도한 공로로 메시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뛰어난 정치 인터뷰어였다. 카메라 앞에 선 정치인들을 모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은 그녀와 인터뷰를 꺼렸다.

그는 전쟁과 폭력의 정치의 선두에 선 지도자들앞에서 자신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취재원에 대한 공격적인 질문으로 악명(?)높은 팔라치는 이란의 지도자였던 호메이니, 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 리비아의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 전 중국 국가주석 덩샤오핑(鄧小平) 등과 인터뷰로 이름을 높였다.

80년 덩샤오핑과 인터뷰에서 팔라치는 천안문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화를 언제까지 놔둘 것이냐는 질문으로 그를 당혹케 했다. 덩샤오핑은 `영원히 보존할 것`이라고 대답했지만 세계 첫 종군여기자의 자부심을 가진 그의 당돌함에 혀를 내둘렀다.

책 <오리아나 팔라치, 전설의 여기자>(아테네. 2005)는 팔라치에 대한 가장 ‘완전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 높은 인물론이다. 책을 집필한 산토 L.아리코는 오리아나 팔라치가 펴낸 소설에 매료돼 그의 열성팬이 됐다.

저자가 처음 팔라치 평전을 쓰기로 마음 먹었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반카렐라상을 비롯 국제 안티부상, 메시나 상, 헤밍웨이상 등을 수상한 팔라치는 자신에 대한 기록 중 어느 한 줄이라도 과장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씌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저술 과정에서 저자와 팔라치는 매번 끊임없는 논쟁을 벌여야만 했다.

책은 소설가 팔라치의 문학세계도 소개한다. 팔라치가 17세의 나이에 지역신문 여기자가 된 이유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 의대에 진학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된 아버지를 보며 학업을 그만두었다. 대신 고전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어린 시절부터의 열정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기자라고 생각해 언론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국제적인 인터뷰전문기자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작가적 열망을 한시도 놓지 않았던 팔라치는 <한남자>, <인샬라>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문학적 재능도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 책은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의 평전이자 `인물사`지만 20세기 저널리즘 역사를 이해하는 소중한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림 = 일러스트레이터 까트린 쿠알드 作 `오리아니 팔라치`)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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