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계천 복원, `전태일`은 어디에?
아름다운 청계천 복원, `전태일`은 어디에?
  • 북데일리
  • 승인 2005.10.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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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만에 복원된 청계천이 지난 1일 시민들에게 공식적으로는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강과 지하수를 끌어온 12만톤의 물이 매일 흐르게 된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 몰린 수백만 시민들과 내외신들의 반응은 청계천 새 단장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증명했다.

이명박 시장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나는 10% 정도 기여했을 뿐이며 나머지 90%는 서울 시민들, 인근 상인들, 공무원들, 시민단체들 그리고 해외기술 협력자들의 도움이었다.” 라고 말해 이번 청계천 복원사업의 진정한 수훈자들은 시민과 상인들, 관련 공무원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 청계천을 생활 터전으로 삼아온 상인들의 눈과 체험을 통해 바라본 청계천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들의 기억에 남아있을까.

르포문학 강사인 김순천씨가 엮은 <마지막 공간, 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삶이보이는창. 2004)은 그네들이 겪었던 청계천 삶을 통해 청계천을 ‘근대 속 투쟁과 현실의 공간’으로 바라본다.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이 개최한 ‘르뽀 문학교실강좌’의 수강생들과 르뽀모임팀이 10개월에 걸쳐 발로 뛴 결실이다. 12명의 글쓴이는 중학교 교사, 사회복지사, 시인 등이며 사진가 2명이 청계천의 삶을 렌즈에 담았다.

청계천 사람들의 이야기는 동정과 우려가 아닌 목격과 해석의 시선으로 완성됐다. 그것은 이 책의 지향점이 단지 청계천 상인들의 생활터전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운 호소가 아니라 청계천에서 피어났던 70,80년대 근대화시기의 노동과 그 안에서 그들이 끊임없이 겪어내야 했던 시대의 결핍에 있음을 말한다.

황학동, 밀리오레, 평화시장, 광장시장, 세운상가로 이어지는 상인들의 생업과 삶에 대한 회고 가운데는 숨 쉴 공간을 충분히 허락지 않았던 재단공장의 10대 방직 공원들과, 전태일과, 근대화 격변기 속 우리 땅으로 이주해 온 이주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김순천씨가 만난 전 평화시장 재단사 김영문씨의 인터뷰는 전태일과 그 동시대의 삶을 근거리에서 묘사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1968년부터 10년간 평화시장에서 재단사와 재단사 보조일을 했던 김영문씨는 생업을 위해 전남 나주에서 평화시장으로 18세에 상경했다. 부모슬하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을 나이인 13세에서 24세의 어린 노동자들은 김영문씨와 함께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평화시장에서 의류기술을 배워야만 했다.

재단사보조일을 하던 어린 노동자들이 근로시간을 채우기 위해 약을 먹고 쓰러져가며 밤을 새우는 모습을 보던 김영문씨의 친구 전태일은 그들을 위해 점심을 거르며 걸으며 자신의 식비와 차비로 풀빵을 사 건넸다. 아직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죽어간 젊은 전태일의 영혼을 잊지 않은 청계천 사람들은 많다.

김영문씨는 전태일과 함께 봤던 마지막 영화가 ‘스잔나’였음을 회고한다. 그에게 전태일과 70년대 청계천 노동현장은 잊을 수 없는 그 삶의 파편일 것이다.

책은 과거로 회귀했다 다시 현재 도착한다. 청계천의 젊음으로 불리는 방산지하상가 ‘광희매듭’과 ‘대양사’의 젊은 상인들의 인터뷰에는 근대화의 격변을 거쳐낸 지금의 상업현장이 그대로 녹아있다.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매듭을 짓는 이들에게 청계천은 꿈의 공장이며 미래의 발판이다. 때로는 지치는 하루지만, 그들은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바쁜 손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공간>은 새로 태어난 청계천이 안고 나가야할 과제들을 시사하고 과거를 기억한다. 이 책에 실린 15편의 인터뷰는 지금, 우리 발아래 흐르는 청계천의 맑은 물이 기억하는 시대의 결핍과 아픔을 조율한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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